한국일보

삶과 생각-백신을 맞으며…

2021-05-06 (목)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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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를 무사히 지켜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 마침내 팬데믹의 강을 무사히 헤엄 쳐 건너 안전한 기슭에 당도했다는 느낌, 뉴왁의 한 월그린(Walgreen) 약국 매장에서 백신을 맞으면서 느낀 심정은 한마디로 깊은 안도감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백신 접종의 기회를 미처 갖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여러 지인들의 얼굴도 한사람 한사람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년간 하루도 Covid-19 바이러스 감염의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1년 전 팬데믹으로 세탁소 매출이 형편 없이 줄어들자 자구책으로 우체국 직원 모집에 지원했고 요행 합격이 되어 70이 한참 넘은 나이에 우체국에 다니게 되었다. 우체국 내근직은 업무 특성상 실내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지근 거리에서 같이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애당초 실천 할 수가 없었다.


커다란 창고같은 우편물 처리 작업장은 냉난방을 위한 공조시설이 돌아가고 있고 직원들이 미국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수 많은 우편물들을 일일이 만지면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바이러스 확산의 온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근무하는 중부 뉴저지 중소도시의 우체국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이미 아홉명의 확진자가 나왔다고 들었다.

그 후 1년간 또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감염되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하루 하루가 마치 목숨을 건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고 이 상황에서 내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스크 쓰기와 손 자주 씻기 밖에 없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우체국에서 입었던 겉옷은 거실에 들이지 않기 위해 현관에서 벗어 놓았다 빨아 입었고 속옷도 바로 벗어 빨았다. 집에 들어오는 즉시 샤워를 하고 창문을 열어 놓아 환기를 시켰다.

지갑과 셀폰, 볼펜 등 몸에 지녔던 소지품들은 일일이 알콜 티슈로 닦아냈고 문 손잡이와 전화기, 리모컨,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내 손이 닿는 곳들은 모두 알콜 티슈로 소독해서 행여 가족들에게 바이러스가 옮길새라 조심 조심 하였다.

그러던 차에 지난 해 12월의 백신 개발 소식은 어둠 속에 비치는 한줄기 밝은 빛과도 같은 낭보였다. 뉴저지 보건국에서 백신 접종 신청을 하라는 이메일을 받고 부리나케 나와 아내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이제나 저제나 백신 접종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으나 보건국에서 이틀이 멀다 하고 보내오는 이메일에는 백신을 놓아주겠다는 소식은 없고 일반적인 홍보 내용만 들어있어 감질만 나게 했다.

당초 기대와는 달리 주 정부에서 해주는 것은 없고 본인이 CVS 나 월그린 같은 대형약국이나 종합병원 등 백신 접종 장소에 직접 온라인으로 신청해서 예약 날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온라인에 들어가 보면 모든 장소가 예약 매진(Fully Booked)되어있었고 어쩌다가 예약 가능(Available) 메시지가 잠깐 떠서 들어가 보면 화면이 움직이지 않거나 곧 예약 매진으로 바뀌어버렸다. 하루종일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며 예약 가능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일 때문에 그 또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오하이오 사는 여동생이 금년 1월 대학교수 직에서 은퇴하고 시간이 남는다면서 오빠 백신 예약을 대신 해주겠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혜숙이는 하루에 수십 번씩 웹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한 후 어렵사리 오빠와 올케의 접종 날짜를 받아주었다. 빙고! 드디어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여러 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머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백신을 맞게 될 것이라 한다. 하루 빨리 집단면역이 생겨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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