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기덕 감독을 추모하며

2020-12-31 (목) 이태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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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체류 중이던 김기덕 영화감독이 12월11일(현지시간) 라트비아 현지 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비드19) 으로 사망했다는 타스 통신이 지역 언론 델피(Delfi)를 인용해 보도했다. 향년 60세.

나는 1972년초 한국을 떠나 영국과 미국으로 타향살이를 해오다 2003년 한국에서 개봉한 업보와 윤회라는 주제하에 다양한 상징성으로 온 세계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 을 해외에서 보게 되었고 그 무궁무진(無窮無盡)의 여운(餘韻)은 아직도 시청각(視聽覺)을 포함한 오가(五感) 이상의 영감(靈感)으로 가시지 않고 남아 있다.

“현학적 상상력과 사유를 작곡하여 우주를 향해 연주하다… 미륵이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시공간을 초월하니/ 내 모습과 중생의 모습이 / 둘이 아닌 연기(緣起)와 연기(演技)라네…”
(by 의식의 주인 6/12/2016)


그는 ‘피에타’로 2012년 베니스 영화제 작품상(황금사자상)을 그리고 그해 은관문화훈장까지 받았다. 그에 앞서 2004년엔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은곰상), 같은 해 ‘빈 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으며 3대 영화제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2018년부터 전 세계적인 ‘미투’ 파문 속에 그와 영화를 함께 했던 여배우 스태프들이 각종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고 폭력에 시달렸다는 폭로가 이어져 법적 소송에 휘말렸고, 그는 이에 대해 해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영화가 폭력적이라도 내 삶은 그렇지 않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리고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2017)’을 끝으로 한국 영화계를 떠나 해외를 떠돌았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의 우주적 천재성에 깊이 매료되어 공감하며 공명하고 싶어서였을까, 김 감독의 명복을 빈다.
요즘 젊은 여성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신조어가 있는데, 이름하여 시선 폭력이니 ‘시선 강간’이란다. 원치 않는 타인의 시선이 폭력을 당하는 것처럼 불쾌하고, 남성의 음흉한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강간에 준하는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는 의미라고 한다.

세월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변한 것일까. 음양조화의 자연의 섭리와 이치가 변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갖고 있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성(怯)이 불결하다고 잘못 세뇌된 만성 고질병이 아니라면 중증의 결벽증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아무한테도 눈에 띄지 않고 하등의 흥미나 관심 밖의 전혀 매력 없는,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존재라면, 이보다 더 슬프고 비참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이태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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