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품의 즐거움

2020-12-23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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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인 작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난다. 이 소설은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어느 부부가 주고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얽힌 이야기다. 남편인 짐은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시계가 있었고, 부인 델라는 길고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날, 델라는 남편에게 선물을 하려고 마음 먹었지만 아무리 아껴도 모은 돈은 고작 1달러 87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이 돈으로는 남편에게 줄 선물을 도저히 사기가 어려웠다. 고민 끝에 델라는 남편의 시계와 어울리는 시곗줄을 발견하고, 그 시곗줄을 남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기 위해 자신의 길고 고운 머리카락을 잘라 20달러에 팔았다. 그 돈으로 시곗줄을 산다.

그걸 남편에게 선물했는데, 남편은 델라에게 주려고 자신의 시계를 팔아 최고급 머리빗 세트를 선물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델라는 이런 상황에 놓이자 울음을 터뜨리고, 짐은 괜찮다며 델라를 위로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들의 선물은 비록 어긋났지만 얼마나 그 마음들이 아름다운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녹이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지금 맞고 있는 크리스마스 시즌, 연말연시에 우리도 멋진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을 것이다. 한해동안 많은 도움을 주고 따뜻한 격려와 위로, 용기와 힘을 아끼지 않아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지금 직장을 잃고 비즈니스가 되지 않아 짐과 델라처럼 아무 것도 제대로 선물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꼭 선물이 아니더라도 말 한마디라도 남을 배려하고 격려하며 사랑과 정을 나누는 그런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품의 정신을 발휘해도 좋을 것이다.
뉴욕한인사회는 올 연말 그 어느 해보다도 나눔의 열기가 뜨겁다. 이는 코로나로 꽁꽁 얼어붙은 한인사회 분위기를 훈훈하게 녹이고 있다.

학자이자 정치가이며 시인인 세네카는 베품에 대해 훌륭한 말을 많이 남겼다. 그가 저서 ‘베품의 즐거움’에서 조언한 많은 구절 중에 우리가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베푸는 건 선물과 다르다. 선물은 일시적이지만 진정한 베품은 영원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베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상대에게 기쁨을 주게 하는 베품이 되게 하라. 베풀 때는 금방 잊어버리는 일시적인 선물보다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것으로 하라.

말없이 베푸는 것 보다 인간적이고 친절한 대화를 하면서 주는 베품이 훨씬 좋다. 해가 될 선물은 하지 마라. 거만한 태도로 베푸는 은혜는 오히려 원한이 된다. 베푼 은혜를 잊어버려라. 은혜를 입은 사람이 감사한 마음이면 족하다“ 등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르케실라오는 가난한 친구에게 몰래 도움을 주면서 그 친구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병을 앓고 있었으며, 기본적인 생계를 이어나갈 돈마저도 없었다. 아르케실라오는 이 사실을 알고 그 친구 베개 밑에 몰래 돈지갑을 넣어 두었다. 돈을 주면 그 친구가 자존심이 상해서 거부할까 생각하고 우연히 돈을 발견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베품, 참 사랑이고 우정이 아닐까.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추고 한파와 폭설이 강타한 이 추운 겨울,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서로가 정을 나누고 한다면 한해 말미가 더욱 풍요롭고 따스하게 장식될 수 있지 않을까.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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