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 개의 얼굴

2020-11-10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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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의 단편 중에 ‘소매치기’라는 작품이 있다. 한 소매치기가 주인공이다. 그는 미남자이고 춤과 노래에도 재능이 있어 사교계의 총아였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면 소매치기로 변한다. 사교계의 총아와 소매치기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2중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는 절규한다 “오, 신이시어, 어째서 나를 악인과 선인을 겸하는 괴물로 만드셨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괴물이 아닐까! 공개적으로는 착하고 경건한 선인의 탈을 쓰고 한 편으로는 악하고 욕심 많은 악인의 탈을 쓰고 사는 2중인간이 아닌지 드러난 자아(自我)와 드러나지 않은 자아가 한 인간 속에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신약성경을 절반이나 쓴 바울도 “나는 죄인의 괴수(우두머리)라고 말하고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고 한탄하였다. 스티븐슨의 명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도 같은 맥락의 소설이다. 2중의 탈을 쓴 인간상을 고발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진실한 자기를 찾기 위하여 고민하지만 그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며 전능한 자의 도움이 필요하여 종교가 생겼다.

고민하면서도 소매치기의 삶을 계속하던 주인공이 옛 친구를 만나면서 변화한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인파가 많은 거리에서 어느 여자의 지갑을 감쪽 같이 훔쳤다. 그런데 자기가 손을 댄 여자의 얼굴을 슬쩍 보고 깜짝 놀란다.

그녀는 어려서 학교 책상에 함께 앉아 공부하던 자기의 짝인 바로 그 소녀였던 것이다. 그는 오랜만에 소리를 내어 울었다. 아 그 때가 얼마나 좋았던가!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는 가로등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울었다. 옛 학우인 소녀와의 만남이 그의 가면을 벗긴 것이다.

회개란 가면을 벗는 것을 말한다. 혼자 신에게 회개할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한 고백은 어쩐지 시원하지 않다. 그래서 목사나 존경하는 인물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여 가면을 벗는 것이 효과가 있다. 가면 벗기는 그리 쉽지 않다.

수치의 선, 혹은 징벌의 선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용단이 필요한 내 평생의 대사(大事)인 것이다. 그러나 용감하게 이 선을 넘으면 정말 평안해지고 천국이 눈 앞에 다가온다. 그래서 예수의 첫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메시지였다.

죄란 소위 나쁜 짓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부나 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나의 큰 허물이다. 좋은 일을 알면서도 욕심 때문에 실천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내 속 차리느라고 거짓말 한 것도 과오였다. 내가 잘 보이고 체면 세우려고 거짓말 한 곳도 죄이다.

거짓말 안 하는 장사꾼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지만 대실업가들은 떳떳하게 장사를 한다. 정치가도 기업인도 결국 정직한 사람이 승리한다. 그것이 양심을 주신 신의 뜻이다. 성공의 비결이 술책에 있는가? 그렇지 않다. 양심적인 길에 놓여있다. 활로가 술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의 양심(Conscience)은 라틴어 Conscientia 에서 나왔는데 그 뜻은 ‘함께 한다’는 말이다. 양심적인 행위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행동이다. 스승의 뜻을 따르는 것은 스승의 생각과 함께 하기 때문에 양심을 따르는 것이 된다.

정이 가도 양심 위에 서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고 종교인도 양심을 따라야 존경받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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