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민은 새우가 아니다

2020-10-30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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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미 대선이 올 한해를 지배해오고 있다. 막말과 거짓과 위선과 비겁함에 마스크를 쓰느냐 않느냐의 양 갈래로 분열된 싸움의 종착역이 다가오는 걸까? 아님 대선 이후 더욱 복잡한 혼란과 분열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인가.

트럼프냐 바이든이냐, 너무도 극명하게 갈라진 노선은 미 국민도 반으로 갈라놓았다.
지난 25일밤 뉴욕 맨하탄 한복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과 반대파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뉴욕전역을 누비던 트럼프 지지 픽업트럭 행렬이 타임스 스퀘어에 도착, 트럼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던 시민들과 맞닥뜨린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트럼프 반대파들은 욕설을 주고받고 주먹 싸움까지 오가는 격렬한 충돌로 일부 시위자들은 구급차에 실려 가고 경찰에 체포됐다.


온몸을 던져 상대방을 밀어붙이고 옷깃을 잡아당기고 서로 밀치는 영상을 보면서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유추해 보았다.

이 중에는 정부의 경기부양안과 실업급여를 목 메이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텐데, 상·하원 의원들은 정치적 세력다툼으로 경기부양안을 대선 이후로 넘겼다. 적어도 그들은 최저임금이나 생계비 따위는 걱정 않을 테니 말이다.

타임스 스퀘어의 주먹싸움을 보면서 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는 말이 생각났는지. 말 그대로 힘센 사람들이 다투는 곳에서 약한 사람들이 할 일 없이 그 사이에 끼어 괜한 피해를 보는 것이다. 정치가들이 할 일이란 온 국민을 잘 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잘 살지 않는다. 행복하지도 않다. 국민은 새우가 아니다.

대선결과가 어찌 되든 불안한 미국 사회는 총기판매량도 급증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28일 미연방수사국 자료를 인용해 올해 3월부터 9월까지 7개월간 총기판매량이 1,510만 여개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91% 늘어난 수치다. 대부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란다.

지난 6월 인종차별 항의시위 당시 맨하탄 핍스애비뉴 명품가, 소호 브로드웨이 일대, 렉싱턴 블루밍데일 백화점 일대 등 맨하탄 빌딩가의 쇼 윈도우와 입구가 모두 대형 합판 가림막으로 막혀져 있는 것을 보았었다.

이번에도 뉴욕경찰은 대선이후 시위와 소요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대비하여 맨하탄 상점가에 기물파손과 약탈을 막을 준비를 할 것을 경고했다.

요즘 뉴요커들은 사상 처음으로 대선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사전 투표소가 있는 곳은 몇 블럭을 돌아서 긴 줄을 이룬 인파를 본다. 이미 투표를 끝낸 유권자들이 많다. 본인도 일찌감치 사전투표를 했다.


그런데 혼란과 분열이 거듭되는 이 지리멸렬한 싸움을 지켜보다 보니 이미 한 후보자를 선택했음에도 불구, 꼭 그 후보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희미해지고 있다. 누가 되든, 우리 국민들의 삶에는 그리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우리는 지금 맹목적인 추종을 멀리 하고 아집과 독선, 어리석음을 버릴 때다. 누가 되든 미국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보수성향이든 진보성향이든 자신의 정치색을 잠시 덮자.

트럼프의 대외정책 공약은 미국 우선주의, 조 바이든은 미국의 리더십 복원과 동맹재건, 그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이민법, 소수인종과 난민 수용 등 모든 면에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생각이 달라도 공존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고 지쳐있다. 내가 지지하지 않던 후보자가 대통령이 된 세상에서도 우리는 잘 살 수 있다.

그 자리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이다. 어느 대통령이든 국민의 반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나머지 반의 인심을 얻기 위해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자. 머잖아 일자리, 헬스케어, 평범하나 행복한 일상, 이것을 국민에게 돌려줄 것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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