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회항(回航)

2020-10-16 (금) 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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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가을,
세월이 진득하게 묻어있는
신발장을 정리 한다
붉은색 구두, 아껴 신던 생일 선물
그이의 벌건 미소 여전이 반짝인다.

이삿짐에 들고 날던
이제는 낡은 구두,
수선 집에 꽤나 드나들었었지
색 바래고 실 터진 볼
닳고 닳은 뒤축
바로 걸어도 뒤뚱 뒤뚱
구멍 난 밑창으로 스며들던 진눈깨비

유치원에 딸 맡기고
일터 향해 냅다 뛸 때
전철 안 뒤 칸에서 앞 칸으로 날고 뛸 때


고단한 발 지탱해 준 무던히 고마운 신
아련한 애틋함에 간직한 소중한 신
굳은살 아렸어도
젊은 꿈 담겨 있어 아름답던 머 언 시절

한 낮, 한 밤,
흘러간 별 헤아리며 웃음 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간지러운 행복 인가!

풀벌레 울음소리
묻어오는 발자국 소리
그리움에 뒤척이다 가을이 간다.

<이선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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