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냥’이라는 말

2020-10-15 (목) 김영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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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으니 친정엄마였다. “여보세요” 가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그냥 걸었다. 잘들 있지? ” 하고 증손주 소식부터 물으면서 거긴 지금 잘 시간이겠구나, 했다.

직장에 다니느라 친정 바로 앞집에 살면서 아이를 맡겨 키웠고,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 우리는 먼 곳으로 이사했다. 멀리 사는 딸에게 아버지가 전화할 때면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그냥 걸었다”는 말을 앞세우던 기억.

엄마나 아버지의 ‘그냥’은 그냥이 아니라는 걸 내가 할머니가 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전화할 일이 있어도 내 아버지나 엄마처럼 나 역시 ‘그냥 걸었다’ 로 말문을 열게된다.

‘그냥’은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 그런 사이가 아닐 까 생각한다.

<김영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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