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석과 거리두기

2020-09-23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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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4촌끼리의 결혼을 금지하는 인구는 적어도 10억 이상이라고 한다. 인구 대국인 중국이 사촌 결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 일본 같은 나라들은 사촌까지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기는 하다.

우리가 사는 미국의 과반수에 가까운 24개주에서는 사촌간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에서의 근친상간 기준은 4촌으로 좁혀진다. 한국에서는 민법 제809조 제1항에 따라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다. 동성동본끼리의 결혼을 허용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훨씬 전인 고려때는 친오누이끼리도 결혼했고, 신라시대 김유신은 여동생의 딸과 혼인하기도 했다. 진흥왕의 부인은 사촌 누나였다고 하고, 고려 광종은 이복남매와 혼인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촌간 결혼 금지는 유교사상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근친혼에 의한 기형아 출산도 문제가 된 게 아닐까.


중세유럽의 교회법으로는 6촌 이내 결혼은 금지였기에, 교회로부터 예외적인 허락을 받은 왕족들만 친족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기형적인 후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장황하게 결혼과 친족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곧 다가올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집집마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은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연중 특별한 날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철저히 요구되는 오늘의 코로나 시대 상황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가족이 한 집안에 모여야 할지 고민들이 많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과는 안전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석은 비동거 가족의 만남이 불가피한 명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이 모여도 4촌정도면 별 상관없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가족끼리의 모임에서는 거리두기나 마스크를 규제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면 가족이란 단어의 정의를 먼저 내리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타인, 즉 남남을 정하는 기준은 서로 결혼이 가능한지 여부가 될 것이다.

한인사회에서는 매년 10월이면 코리안 퍼레이드를 개최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퍼레이드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올 추석잔치도 사회적 거리두기 문제로 예전처럼 잘 치러내지 못할 분위기가 보여 가뜩이나 위축된 한인커뮤니티를 더욱 냉랭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인들은 추석을 미국의 땡스기빙 데이 보다 먼저 기리면서 송편이라도 빚어 이웃끼리 친척끼리 나눠먹는 민족이다. 그런 아름다운 명절이 코로나 시대를 맞아 어떻게 치러질지….

당국이 정한 가족간 거리두기는 동일한 직계 가족에 속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 최소 6피트의 거리를 생활속에서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어떤 사람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나이든 부모에게 갓 태어난 손주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한다.


“안전한 결혼식 등 가족행사 주관을 위해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해 주세요!” 하고 온 사방에서 난리다. 코로나 확산을 방지할 수 있도록 모두가 최대한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일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모든 사회활동에서 타인과 거리를 두는 ‘뉴 노멀’을 해야 하는 것도 힘든데… 가족과 친척 간에도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닐까.

한국민족은 6.25 한국동란을 3년이나 겪어낸 강인한 민족이다. 깨끗한 물은커녕 전쟁통에 오염될 대로 오염된 상황에서도 거뜬히 살아남아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민족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상황을 잘 살펴 닥친 상황을 현명하게 잘 극복해야 하겠다. 이번 명절 시즌에 소중한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생각인지 우리 모두 슬슬 마음을 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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