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연을 따른다

2020-09-23 (수) 성향/스님·뉴저지 원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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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 원인과 그에 필요한 조건들이 갖추어질 때 새로운 현상이 일어난다는 뜻인데 불교 교리 상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 대혜종고(1089~1163) 선사가 있었다. 그는 당·송 대의 선사로 공안 참구법인 간화선의 시조이다. 선사의 글을 모은 ‘서장'이라는 책에‘‘인연을 따르라’는 게송이 나온다. ‘세상 일에 거슬리는 것도, 순조로운 것도, 인연 따라 곧 응할 것이며, 마음속에 머물게 하지 말라.’(事無逆順 隨緣卽應 不留胸中)

우리가 하는 일에 일반적으로 마음에 거슬리는 일도 있고, 마음에 맞는 일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일 자체가 거스르게 하거나, 맞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의 게송이다. 또한 이는 사람이 자기의 성격이나 습관 또는 사회풍습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이 있는 것이지, 그 상황이 사람을 거역하는 일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각기관이 느끼는 감정이고, 일 자체에가 거슬리고 순조로운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감각적인 느낌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현상은 좋고 나쁨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적인 느낌은 자기가 지은 업과 성격 그리고 습관 등 분별심으로 일어나는 것인데, 사람들이 미혹하여 이런 분별심을 없애려 하지 아니하고 피하고 멀리하려고만 하니, 이는 결과적으로 인연을 거역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인연, 상황 등을 거역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순리에 응하고 잘 대처하라는 뜻과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세상 모든 존재들 일체의 인연이 화합할 때 이루어지고 융성해지며 활성화되는 법(진리)이지만 또 인연이 다하여 흩어지기 시작하면 쇠퇴하여 결국 소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부부의 인연을 가진 두 사람이 성격이 맞지 않아 못살겠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상황은 상대방이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감정이 대부분이다.

물론, 상대방이 잘못할 수도 있지만 나의 눈, 귀, 코, 혀, 몸이 느끼는 감정이 그가 잘못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 나의 감정을 바로 잡아‘ 연에 따라 곧 응하라. ’의미를 실천하여 상대에 비추어 나의 성품, 습관 등을 살펴보고 상대를 위해 서로 맞춰가며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연에 따라 곧 순응’하는 모습일 것이다.

또한 사업이나 공부를 하는 이들도, 주변 상황, 조건에 불만을 가질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잘 살펴 그 조건에 맞게 자신이 하는 일의 방향과 마음을 바로 잡아 일념으로 집중하여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 또한‘ 연에 따라 곧 응’하는 모습이니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처하며 살아간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되어 더 큰 가치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 나의 모습과 감정이 바로 내 자신이 그 동안 쌓아나간 인연에 따른 결과의 모습인 것이다. 어려운 시절이라도 되도록이면 더욱더 적극적이고 좋은 마음을 내어 연에 따라 순응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작은 물방울이 끊임 없이 떨이지면 마침내 바위를 뚫는다.’고 하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인내하며 꾸준하게 계속 노력 한다면 마침내 원하는 일을 성취할 것이다. 모두가 후회 없는 좋은 결실을 이루길 두 손 모아 빈다.

<성향/스님·뉴저지 원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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