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방인의 밥벌이

2020-08-21 (금) 박사농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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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아 솔아 고향소나무야
추방당한 디아스포라 오디세이
운명이 아니길 불의 심장으로
고뇌의 불꽃을 사루고
타는 검은 가슴 달래면서
자본의 단맛과 유혹에도
푸른 영혼을 붙들어 안고
입술과 살을 파는 자라 해도
영혼만은 팔지 않았네
굴욕이라 알지만 먹고 사는 문제로
굶주림 험한 바닥을 팍 팍 기었고
눈물젖은 빵과 찬밥을 삼켰어도
일편빙심(一片氷心) 지켜가고 있네
때로는 가슴 저 밑바닥에 갇힌
찬 얼음 속의 이성이 묻는다네
고전의 진·선·미 다 어데메 갔느냐고
아시는가 1960년 이방인의 서러움을,
인종의 계급 갈등과 혐오의 폭력
이방인의 밥벌이 아고라에는
비애가 넘치는 아나키의 증오와
사마리아인의 헌신이 있었다네
이제 생의 사선(死線)에 서서
모래사막 언덕 등선길 위 멈춰
슬픈 천상노을을 바라보는 눈방울
등짐 무게에 지친 낙타처럼
살아온 세월 무늬 바랜 형상에서
이방인의 인생 결산을 헤아려 보건만
인간 본성의 진·선·미는 선악의 되깎이 일뿐
내 사(嗣), 생명의 뿌리 깊이 내렸으니
초록의 생명과 혼이 깃드며
생을 가꾸는 늪에 누워 함께 살아가는
암수동체 한 마리 할미고동일러라
지난 날들을 회상하는 시간 속에서
한 우화(羽化)의 소망을 품어본다

<박사농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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