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잃어버린 드론

2020-08-20 (목)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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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선물로 무엇이 필요한 지 묻는 아들에게 ‘드론(Drone)’을 하나 사달라고 했더니 품목이 생뚱맞은지 아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며칠 후 기다리던 드론이 택배로 도착했다. 비용은 아들과 아들의 여친이 반반씩 내기로 했다고 한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드론은 직사각형 몸체에 X자 모양으로 뻗은 다리에 네 개의 프로펠러가 달려있었다. 스마트폰에 앱을 깔고 폰과 드론을 와이파이(WiFi)로 연결하면 GPS 시그날로 드론을 조종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또한 드론에 달려있는 고해상도 카메라로 항공 촬영도 가능하다.

그러나 빨리 드론을 날려보고 싶은 마음에 복잡한 스마트폰 연결 작업은 뒤로 미루고 우선 수작업으로 드론을 날려보기로 하였다.
가게 뒤 넓은 공터에 드론을 내려놓고 원격조정기의 이륙버튼을 누르자 ‘윙-‘하는 소리와 함께 네 개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더니 드론이 가볍게 떠 올랐다. 조정기 좌우에 달린 두 개의 조이스틱으로 드론의 고도와 진행방향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었다.


30분정도 드론을 날려보고 조종에 자신감이 생긴 나는 드론을 더 높게, 더 멀리 날려보고 싶어졌다.
가게 뒤에는 20여미터 높이의 참나무들이 담장처럼 나란히 서 있는데 그 너머는 뉴욕행 철로가 지나고 있다. 드론의 고도를 나무보다 높게 올린 다음 철길 쪽으로 드론을 날려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드론이 높은 나무에 가려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머지 원격조정기의 조이스틱을 이리 저리 돌려보았으나 드론은 나타나지 않았다.
얼굴이 하얘진 나는 조정기의 착륙 버튼을 누른 후 담장 넘어 철길 쪽으로 드론을 찾아 나섰다. 언제 기차가 달려올 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그런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선로 위를 걸으면서 철길과 그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드론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더 멀리 날아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자전거를 타고 근처 주택가의 잔디밭이며 인도와 차도 등 구석 구석을 살펴보았으나 그 역시 허사, 결국 찾기를 포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들과 그의 여친한테 받은 선물을 받은 지 1시간도 안되어 잃어버리다니 이 무슨 낭패인가. 드론이 눈에 밟혀서 밥맛도 없고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이튿날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온통 드론에 가 있었다.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사소한 일로 하느님을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만 드론을 꼭 찾게 해주세요.’

사실 짚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지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는 손바닥만한 작은 드론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그래도 미련이 남은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아보자며 다시 철길로 나가보았다. 그런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철길로 들어서자마자 드론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드론은 상행선과 하행선 철길 가운데 움푹 들어간 자갈밭에 사뿐히 내려앉아 있었다. 어제 그토록 찾아도 눈에 안 띄던 드론을 이렇게 쉽게 찾다니,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10분도 안되어서 제 기도를 들어주셨군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요. 감사합니다. Thank God!’ 내년 생일 선물로는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고무보트를 사달라고 해야겠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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