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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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누구 편인가

2019-06-25 (화) 노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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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

미국 독립기념일이 눈 앞이다.
‘독립’하면 무엇보다 먼저 국기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서양화의 선구자이신 김병기 화백이 오래 전에 들려주신 이야기가 마치 영화장면처럼 그려진다. 광복이 되던 다음 날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갈 때, 정거장 마을마다 사람들이 일장기의 빨간 동그라미를 태극문양으로 바꿔 그린 임시 태극기를 흔드는 것을 봤다고 하셨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송기정 선수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가 얼마나 한국인의 가슴을 저리게 했었는가.

요즈음은 태극기하면 태극기 부대가 떠오른다. 우파, 아니 극우파다.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 전 대통령 얼굴과 트럼프 얼굴을 들고 북을 치며 행진하던 모습이다. 지난 봄 어머니를 뵈러 서울에 간 그 주말에 명동에 나갔는데, 광화문서부터 교통을 차단시키며 꽹과리를 치며 내 앞으로 지나간 태극기 부대다.


지금 홍콩의 시가지를 메운 시민들의 데모가 온통 뉴스를 장식하고 있지만, 내가 경험한 이 태극기 부대는 뉴스에도 나오지를 않았고, ‘양쪽이 붙어서 끝장을 내야지"하며 끌끌 혀를 차던 택시 운전사의 불평 정도였다.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인가 아니면 우파의 상징인가. 그렇다면 미국 국기 성조기는 어떤가? 미국의 상징인가 아니면 트럼프 지지자의 상징인가.

한국에선 삼일절이나, 광복절에나 보던 태극기에 비해서, 미국에 오자마자, 맨해튼 5번가 34가 - 얼마전 문을 닫은 -로드 앤드 테일러(Lord & Taylor) 백화점 빌딩에 쭈욱 걸린 성조기를 보며, 미국은 자기나라 국기를 온갖 곳에 참 잘 이용하는구나 했었다. 대학 다닐 때 히피의 상징인 피스 마크와 함께 미국 국기를 이용한 여러 가지 장식용 상업 상품들을 많이 보긴 했었다. 우리는 태극기라면 마치 집안 어른 대하듯 했는데 말이다.

딸애가 강아지를 사러 구글로 찾아 필라델피아 시골에 도착해보니 어느 집에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남부를 상징하던 미국남부 연합기(Confederate Flag)가 달려 있어서 깜짝 놀랬다고 했다. 숨어있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나 보란 듯이 나타나는 현실에 겁이 났던 것이다.

미국 국기를 상징으로 들고 나선 트럼프가, 이제는 계속해서 미국을 위대하게 하자고, 다음번 대통령에 출마하는 모양이다. 성조기에 대한 경례를 마다하는 흑인 운동선수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았듯이, 미국도 성조기가 정치 성향을 가르는 것이 되어버린 것도 문제인 듯 하다.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축구 월드컵에 미국 선수를 응원하는 미국인 남녀노소들이 얼굴에 성조기를 그리고 프랑스 작은 마을 거리에서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신선해보였다. 며칠 전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지 50년이 된 기념 방송을 보며 달 표면에 미국 국기가 달리는 순간 미국 대통령이 통화를 장면에 새삼스럽게 감격했다.

“국기는 바로 저 것인데” 독립전쟁이나 운동경기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국기는 국민을 상징해야 것인데…. 하이웨이에서 성조기를 차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언뜻 저사람 혹시 이민자 싫어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민자로서, 암만 미국 사람이 다 되었다 해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면 겁이 난다. 저것들이 언제 무슨 짓을 할까…하는.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일까. 그 모습만으로도 한 나라의 긍지와 자부심을 나타내는 국기가 한 쪽으로 일그러져 보인다.

<노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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