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자마와 비키니

2019-06-21 (금) 백향민 영어음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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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장애를 일으킨 아빠를 구하기 위한 5세 여아와 911과의 통화가 공개되었다. 곧바로 달려온 앰뷸런스의 도움으로 아빠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똑똑한 딸은 이렇게 아버지를 구했다.

사건은 물론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경찰은 곧 앰뷸런스가 도착 할 테니 문을 열어두라는 지시를 하는데 꼬마는 알았다고 답을 하며 그러나 자신이 파자마 차림으로 있으니 옷을 갈아입어야겠다고 말한다. 전화기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경찰의 지시에 파자마를 갈아입지는 못했다.

이 꼬마는 왜 파자마를 갈아입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러면 잠시 옷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인류 최초의 옷은 단순히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커지고 문명이 발달함에 보온의 목적을 넘어 많은 의미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상징이기도 하고 특정집단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외에도 옷의 용도나 성격에 따라 실내복 외출복 내복 겉옷 등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이들은 용도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바지와 내복이 서로 위치가 바뀐 상태는 상상해 보면 그 치명성이 이해가 간다.


대학시절 등산을 간적이 있다.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는 계곡물에서 남녀 학생들은 모두 수영복으로 갈이 입고 물놀이를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관리인이라는 영감이 나타나 여학생들의 비키니 수영복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며 물놀이를 중지시켰다. 그때 그 관리인은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수영복은 몸을 가리는 부분이 적어도 겉옷이다. 파자마는 아무리 긴 옷이라도 실내복이다. 비키니는 대중 앞에서 입을 수 있는 겉옷에 해당되지만 파자마는 대중 앞에서 입을 수 없는 실내복이다. 그래서 손님을 파자마 차림으로 맞이하지 않는다.

아빠를 구한 이 꼬마 숙녀는 파자마 차림으로 외부인인 구조대원과 만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5세 여아지만 생각의 깊이는 이미 성인이다. 아빠를 구한 영웅적 행동과 함께 또 다른 감동이다.

오늘, 꼬마 숙녀와 오래전 파자마 영감이 오버랩 되면서 혼자 미소 지었다.

<백향민 영어음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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