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버지의 자리를 찾자

2019-06-1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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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머니날은 5월 두 번째 일요일이고 아버지날은 6월 셋째주 일요일이다. 아버지날을 지키는 나라는 별로 많지 않다. 미국을 비롯 가까운 남미지역에서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멕시코가 아버지날을 지킨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보다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랑도 덜 받는 것 같다. 어린 자녀들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하고 물으면 80~90%는 “엄마”라고 대답할 것이다. 10~20%의 사랑만 받는 아버지는 조금 억울하고 슬프기도 할 것이다.

어린 시절도 어머니와 함께 한 추억들이 80~90%라면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은 10~20%라 할 수 있다. 늘 기다리던 기억밖에 없다는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기도 한다. 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좋아하는 취미가 무엇인지, 잘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오는 16일 아버지날을 맞아 올해 최고의 아버지는 한국인 33명을 태우고 침몰한 헝가리 허블레아니호의 선장 롬보스 라슬로(58)씨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6일 선체 인양과정에서 구조대원들은 조타실 의자 밑에 누워있던 롬보스 선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허블레아니호의 조타실은 선체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출입구가 사람이 드나드는 큰 구멍형태일 뿐 문이 아예 없다고 한다. 창문도 성인 남성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는 크기로 좌우측에 달려있다니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한다.

로보스 선장의 딸은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수십년간 배와 함께 살아오신 분’이라고 울먹였다. 자신의 자리를 죽음으로 지킨 아버지, 그는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었다.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이준석 선장 혼자 속옷차림으로 탈출했던 일과 비교된다.

한편, 지난 2018년 12월5일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장례식날, 아들 조지 W 부시가 한 추모사 중 한 대목은 지금 들어도 좋다. “ 아버지, 당신은 아들과 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아버지였습니다.”
세계 번영과 평화의 수호자, 미국의 발전에 기여한 위대한 지도자, 이런 말들이 다 무슨 사용인가. 내게 최고의 아버지면 그는 성공한 인생이다.

또한, 미국에는 떨어져 사는 아버지와 자식들이 많다. 한국과 미국으로 헤어져 살기도 하고 국경을 넘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부모와 함께 불법으로 들어오다 체포되면 부모는 이민재판소로 넘어가고 아이들은 처벌대상이 아니므로 풀려난다. 미국의 친척이나 후견인한데 맡겨지면 그나마 다행, 아니면 수용소에 있어야 한다.

작년 12월에는 불치병 아들 압둘라 하산(2)을 둔 아버지의 눈물이 미국을 흔들었다. 아버지 하산(22)은 미 국적 소지자로 고향 예멘과 관계를 지속하던 중 예멘 국적 샤이마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들을 낳았다. 남편은 어린 아들의 병을 고치고자 미국에 먼저 건너왔지만 아내는 미국의 여행금지법으로 입국할 수 없었다. 아이의 죽음을 앞두고 보도된 사연은 미국 여론을 움직였고 드디어 예멘 난민 엄마는 정부 허가로 미국에 들어왔다. 이렇게 가족이라고 해서 다같이 살지도 않고 다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특히 이민 1세 아버지는 삶의 무게에 지쳐 집에 오면 밥 먹고 잠자기 바쁘다. 깨어있을 때는 한국TV만 보는 아버지, 자녀와의 대화는 하루 고작 몇 분, 자녀에게 하는 몇 마디 말은 잔소리가 되기 일쑤다. 오랜 세월 후 돌아보니 아이들과 좋은 추억 하나 없이 훌쩍 다 자란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지난날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 자식이 20살, 30살이 되어도 아버지로서 해 줄 것이 있다.

그래도 우리 대부분은 가족 누군가가 신분미비자 수용소에 있지 않다. 거칠고 험한 손으로 정직하게 일하는 아버지가 옆에 있다면, 아직 살아있으므로 기회는 있다. 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바로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를 찾자.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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