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스마엘

2019-05-31 (금)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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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스마엘이라고 부르라” 미국 소설로서 세계문학의 첫 고전이 된 헤만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첫 마디이다. 고래잡이 이야기로 되어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합이라는 선장이며 이스마엘은 이 고래잡이 배의 한 무명의 선원이었다.

이야기 줄거리로 말하자면 독자의 촛점이 되는 인물은 어디까지나 아합선장이었다. 무대 중앙에서 관중의 시선과 각광의 세례를 독차지하며 다채롭고 빛나는 연기를 하는 주역의 인물은 바로 아합이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변두리에서 얼씬거리며 유명무실하고 눈에 띄지도 않는 캐스트에 불과했다.

우리가 아는대로는 원래의 이스마엘은 족장 아부라함의 첫 아들이었다. 아브라함과 그의 본처 사라는 늦게까지 자식을 못 낳다가 결국 사라의 몸종인 애급여인 하갈과 아브라함이 동침함으로 그 사이에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러나 뒤이어서 본처인 사라가 뒤늦게나마 아들 이삭을 낳게되고 하갈과 이스마엘은 따라서 사라의 적개심과 경멸심의 목표가 되었다. 사라는 남편을 조종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쫓는 일에 성공하지만 아부라함은 그들을 사랑하고 측은이 여겼다고 기록에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또한 이스마엘은 아랍인의 조상이었다고 한다.

적어도 이스라엘의 역사무대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본처들은 무대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엘과 그의 자손들은 변두리역을 한 배역에 불과했다.
모든 인간의 역사는 다채롭고 유능하며 빛나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로 가득 차있다. 모든 지배자와 정복자 그리고 가난한 자들 위에 올라 앉아있는 부자들은 틀림없는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모든 여자는 자기의 남편과 아들이 조역이 아니라 주역이 되기를 원하고있다.
선장 아합은 그의 숙원인 모비딕을 잡으려고 세계의 바다를 배회하다가 결국에는 그 괴이한 고래가 오히려 그의 배를 치받아 그 배를 박살내고 선장과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은 다 죽게된다. 그러나 단 한사람 선원 이스마엘은 구사일생 배에 실었던 관을 붙들고 그 관 속에 누워 표류하다가 지나가는 선박에 의하여 구조된다.

다채롭고 빛났던 주인공 선장 아합은 죽고 무명의 선원 이스마엘은 살아남아서 선장과 괴이한 고래의 이야기이며 그 배의 마지막 참변의 이야기를 세상사람에게 들려주는 줄거리로 멜빌은 끝을 맺었다.

멜빌 자신의 자신의 생애도 이스마엘과 같은 배역의 삶이었다. 죽기까지 가난과 병과 빚에 시달리며 뉴욕 항만세관의 한 평지원으로 고생만 하다가 간 작가였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이야기에는 모든 주인과 강자는 다 죽지만 배역의 약자는 죽어도 죽지않는다는 소신이 들어있다.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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