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제직 20년 동안 참 많은 결혼식을 치뤘다. 가끔씩 나의 삶은 이제 내 꺼가 아니다라고 생각을 한다. 나도 내가 결혼시킨 수많은 이들, 영세 준 수많은 아이들, 장례를 치른 수많은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잘 살아 줘야한다. 내가 깽판을 치면 가뜩이나 좁은 미국 이민사회안에서 많은 이들에 큰 누가 되고 상처가 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성인이 될 것까지는 없더라도 바보 같은 짓을 해 손가락질 받거나, 부끄러운 일을 해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 안해야 한다.
결혼식 할 때마다 내 강론에는 레퍼토리가 있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하고 묻고서는 “눈물의 씨앗”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엄숙한 결혼식장에서 사람들을 웃게 만들지만 사랑했기에 울어 보지 못했으면 아직도 인생을 모르는 게다. 우리가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머리로 계산처럼 한다면 울음이 안 나온다. 사랑은 가슴으로 했기 때문에 괴롭고 아프고 힘이 든 것이다. 이렇게 능청을 떤 다음에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 라는 유행가 가사를 들먹인다. 왜냐하면 정말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애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연애는 그저 감정으로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돈이나 시간, 자신의 재능만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에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 그 이유이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심장으로, 진심으로 하는 것이다.
좋고 편한 사랑은 누구나 한다. 건강하고 돈 많고 힘 있고, 그럴 때 사랑을 누가 못하랴?
그러나 아프고 힘 없고 돈 없고 고통스러울 때는 다르다. 암에 걸린 부인을 10년 넘게 돌본 형제 집에 수년 동안 봉성체를 했다. 부인을 화장실로 나르고 옷 갈아 입히고 잔소리 구박받아가며 음식 해 바치던 그 형제가 궁금하다. 그 부인이 돌아가시고 지금 그 형제는 어떻게 사실까? 참된 사랑은 풍파 속에, 시련 속에서 드러난다. 사랑에는 희생과 극기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를 다 내어주는 사랑이 우리의 힘으로만 가능할까? 우리가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