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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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의 으뜸

2019-05-28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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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끝자락. 봄은 지나가고 여름이 성큼 다가온다. 올 봄엔 비가 잦았다. 요즘엔 태양볕이 따갑다. 소나기도 단골이다. 그래서인지 뒷뜰 텃밭에 온갖 식물이 풍성하다.

새봄에 돋아난 들풀들이 무성하다. 노란꽃이 피던 민들레는 세대교체 중이다.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파릇파릇한 새순으로 또 돋아나고 있다. 하얀 꽃가루를 털어낸 고참민들레 곁으로 새싹들이 어울려 자란다. 새로 씨를 뿌린 부추는 줄기가 굵어졌다. 한 겨울을 이겨내고 자란 부추의 키도 부쩍 자랐다.

쑥쑥 자라는 쑥은 영토확장에 한창이다. 몸을 불리고 뿌리를 넓게 뻗으며 주변을 온통 쑥밭으로 만들고 있다. 신선초도 마찬가지. 줄기를 따줄수록 더욱 빨리 제 모습을 갖춘다. 여기저기서 못보던 새모습도 보인다. 민트는 땅 따먹기에 열중하고 있다. 작은 울타리를 치고 그곳을 벗어나는 민트를 뽑아내는 일손이 바쁠 정도다. 참으로 강한 생명력들을 지녔다.


잡초사이로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뽕나무 잎새는 아기 손바닥만큼 자랐다. 오디는 연두빛을 거쳐 붉은색이다. 배꽃처럼 하얀 꽃이 만발했던 체리나무는 영 아니다. 지난해와는 달리 별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 봄에 새 식구가 된 감나무가 아직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텃밭에 다양한 채소 잎들도 풍성해졌다. 상추, 쑥갓, 깻잎, 겨자채, 케일, 곰취 등 쌈채소들. 이른 봄에 심은 이들의 잎이 이제야 맛의 절정인 반 뼘 남짓 자랐다. 매일매일 쌈채소에 신선초, 미나리, 부추, 민들레 등으로 쌈 싸먹기 바쁘다. 삼겹살에 쌈채소별로 또는 끼리끼리 모두 섞어 겉절이를 무쳐서 곁들이면 신선이 따로 없다. 쌈만 보면 고기를 굽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지금이 지인들을 불러 쌈 파티하기 딱 좋을 때가 아닌가 싶다.
쌈밥을 즐기다보니 쌈채소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효능, 특성 요리법, 유래 등 다양한 것들을 살펴본다. 알고 있었지만 건강에 좋다는 내용을 보면 쌈 채소를 더 자주 먹게된다. 요즘엔 ‘미나리’에 유독 관심을 갖고 있는 중이다.

미나리는 달면서 매운 맛과 향긋한 풀향이 특징이다. 미나리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뿌리, 줄기, 잎을 모두 섭취할 수 있다. 그 중 주로 향기가 많은 잎을 사용한다.
미나리는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건강에도 좋다. 비타민 A,B,C 엽록소, 엽산, 철분 등이 풍부해 빈혈완화와 혈액 순환에 좋고, 혈액도 깨끗하게 한다.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 예방에 효과적이다. 칼륨이 많이 함유돼 있어 체내 중금속과 나트륨 등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나리는 쌈채소 중 쑥갓과 궁합이 맞는다. 함께 먹으면 고혈압을 낮추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미나리는 혈압 강하 작용을 하는데, 쑥갓은 마그네슘 성분이 풍부해 모세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내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나리 향기는 비린내를 제거하는 데 효력이 있어 생선탕류에 많이 애용된다. 해독 기능이 아주 뛰어나 복어탕에 긴요하게 쓰인다. 미나리의 상큼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좋아 쌈을 싸먹거나 나물 무침에 자주 애용되고 있다. 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약으로 섭취하려면 체질에 맞아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의보감은 “미나리가 음식물의 대장, 소장 통과를 좋게 한다, 황달과 월경불순 등 부인병, 음주 후의 두통이나 구토에 효과적이다. 김치를 담궈 먹거나 삶아서 혹은 날로 먹으면 좋다”고 전한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초목에 품격을 매길 때 나무의 으뜸은 늘 푸른 소나무를 꼽았다. 꽃의 으뜸은 눈 속에 피는 매화다. 야채의 으뜸으로는 응달의 수렁에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를 꼽았다. 근채삼덕(芹菜三德)이라하며 미나리를 ‘세가지 덕을 가진 식물’로 여겼다. 더러운 물을 맑게 하고, 그늘에서도 잘 자라며, 가물어도 쉽게 죽지 않았음을 일컫는 말이다. 미나리는 선악과 우열을 가림없이 포옹해 주는 어머니에 비유되기도 한다.

텃밭 아무 곳에서 잘 자라는 미나리는 맛과 향도 좋고, 건강에도 효과적이며, 삼덕과 포용력의 상징인 셈이다. 그래서 야채의 일품이자 으뜸인 게다. 폭염이 예상되는 올 여름을 앞두고 지금부터 미나리 사랑에 한번 푹 빠져보면 어떨런지?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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