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혜의 등불

2019-05-07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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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자연이 온통 연초록으로 빛나고 있다. 왕성한 대지의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진다. 모든 생명은 영원한 성장을 향해 벅찬 꿈을 가득 안고 끝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오는 12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음력으로 4월8일. 석가탄신일이 들어 있는 5월엔 불교신자가 아닐지라도 불법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살아보면 어떨까. 그 가르침은 우리의 생명에 공덕의 밭을 일구고 소망의 씨앗을 뿌리기에 한없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불교 ‘화엄경’의 핵심사상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의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다. 마음이 주인이 되어 모든 일을 시킨다. 그러니 마음 속에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 또한 그러 하다는 것이다. 평범한 중생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진리는 먼 하늘이 아니라 흔들리는 내 마음 어디엔가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불교는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를 이롭게 한다는 이타자리(利他自利)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또한 무재칠시(無財七施)를 통해 재물 없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의 방법도 전해주고 있다. 그 보시는 얼굴에 항상 밝은 미소를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화안시(和顔施)다. 이어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을 한다. 사랑, 칭찬, 격려, 양보의 말을 해준다는 의미의 언시(言施).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심시(心施). 호의를 담은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는 안시(眼施). 약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일손을 거들거나, 고개 숙여 인사하는 신시(身施). 자리를 양보하는 상좌시(床座施). 남에게 편안하게 쉴 방이나 공간을 내주는 방사시(房舍施) 등이다. 비록 가진 것 없어도 베풀 수 있음을 알고 또 그것을 실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참으로 큰 가르침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석가탄신일이면 불교신자들은 연등을 밝힌다. 그들은 캄캄한 거리에 불 밝힌 연등을 만나면 극락이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설레고 그저 행복할 뿐이다. 부처님 오신날에 연등을 밝히는 이유는 지혜를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면 이렇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눈이 먼 사바세계에 붓다가 출현한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붓다를 따라 사람들이 번뇌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붓다의 등장으로 아웅다웅, 허둥지둥, 헛발질을 하던 사람들에게 바르고 그릇된 것을 살피는 눈이 생겨 난다. 피해야 할 것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이성도 생긴다. 뿐만 아니다. 밝은 지혜의 눈을 떠서 더 이상 마왕 파순의 권속으로 살지 않게 된다고 한다.

캄캄한 세상을 밝히는 것이 지혜다. 자신이 얼마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지를 절감하고 적극적으로 어둠을 밝히는 것이 지혜다. 붓다가 이 땅에 출현한 것은 그 자체가 중생에게도 작용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누구라도 어둠을 밝힐 수 있고, 누구라도 지혜로울 수 있으며, 누구라도 더 이상 번뇌에 끄달려 종으로 살지 않을 수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날에 지혜를 상징하는 연등에 불을 밝힌다는 것이다.

불교신자들은 연등을 켜면서 여러 가지 바람들을 담는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이 이루어지길 소원한다.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이 사회의 그늘진 자리가 다 사라지라는 바람도 담고 있다.

등을 켜는 본래의 의미는 내 앞에 켠 등으로 나의 주변에 있는 어둠이 사라지듯, 내 앞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 지혜로 인해 내 어리석음이 사라지게 해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 주변에 있는 이웃들 역시 내가 켠 밝은 등불 덕분에 곤경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이루라는 의미이다. 그런 목적을 담고 있기에 연등은 지혜의 등불인 셈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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