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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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자마 패션

2019-05-0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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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고등학교가 아이를 데려다주러 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에게 잠옷과 레깅스 착용을 금지하는 드레스 코드를 시행했다는 소식에 ‘어느 학교야?’ 궁금증이 일면서 웃음이 나온다. 4월24일 CNN 방송은 텍사스 주 휴스턴 소재 제임스 매디슨 고교의 칼로파 아웃레이 브라운 교장이 이달 초 학부모들에게 잠옷이나 노출 심한 의상을 입고 교내에 들어올 수 없다고 레터를 보내 통지했다고 한다.

새 규정에는 잠옷, 레깅스, 짧은 반바지, 짧은 드레스, 가슴이 깊이 파인 상의를 입은 학부모는 학교에 들어올 수 없다. 또 헤어롤, 샤워캡을 머리에 착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교장의 이 조치에 일부 학부모와 교육계는 계급차별적인 요소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난하고 있다.

오래 전 미국에 와서 10년이상 플러싱 지역 한 아파트에 산 적이 있는데 그 아파트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반반씩 거주하고 있었다. 같은 층에 딸을 셋 둔 중국인 가정이 있었다. 엄마는 분홍색 레이스 긴 잠옷을 입고 고만고만한 초등학생 딸아이 셋은 귀여운 알록달록한 잠옷을 입은 채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종종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대로 귀여운데 분홍색 레이스 잠옷 입은 중국인 여인은, 하하하. 정작 난감한 것은 푸른 파자마 바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그 집 남자였다. 눈을 어디 둘 데가 없어 당황했었다.

중국인들은 왜 미국에 이민 와서도 파자마를 즐겨 입을까?
2008년 북경 여름 올림픽 때 외국인을 모셔놓고 웃통 벗고 다니는 것과 잠옷 차림은 수치이자 체면 구기는 일이라면서 공안이 나서서 단속했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는 ‘시민 외출시 잠옷 금지’를 시행시키고자 자원봉사자들이 노력을 많이 했다. 아침에 잠옷 입고 길에 나온 사람을 보면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올 것을 설득, 아침이면 수백명씩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직 뿌리를 뽑지 못한 것은 이 ‘파자마 패션’이 고유의 패션 습관이라고 한다. 상하이 지역은 1930년대부터로 역사가 깊고 일반적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잠옷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경제사정이 좋아지면서 상류층 노인들이 먼저 잠옷 차림으로 부유함과 여유로움을 표시하는 증표가 되었다는 것.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에 ‘시안같은 도시에 가서 잠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고 놀라지 말라. 잠옷이란 것을 모르고 산 중국사람들이 비싼 잠옷을 신분 과시용으로 외출복으로 입고 나선 것이 엉뚱한 유행이 되어 버렸다’는 문장이 나온다.

사실, 프랑스의 전설적인 패션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1920년대 사람들 앞에서 파자마 입고 지내는 것을 좋아했으며 패션쇼에서 자주 파자마를 선보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친구 생일파티나 방학, 주말에 파자마 파티(Pajama Party), 슬립오버 파티(Sleep over Party), 슬럼버 파티( Slumber Party)라고 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행사를 자주 갖는다. 이 날 각자의 베개나 침낭, 게임기를 들고 가기도 한다. 파자마 파티를 주최하는 집에서는 피자나 치킨 윙, 핑거 푸드를 준비하여 아이들을 즐겁게 만든다. 밤 새워 수다를 떨거나 같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데 다들 전날부터 들떠있다.

본인은 이 학교 교장의 조치를 너무 하다고 할 생각이 없다. 또 몰상식 하다, 교양 없다고 성토할 정도는 아니다. 그 사람이 가장 편한 옷이 파자마라는데, 자신이 좋아서 입는다는데 굳이 말릴 것까지야 없다싶다. 정면으로 보기 민망하면 고개를 살짝 돌리면 될 것이고...각 나라 인종마다 문화 차이가 있지 않는가.

또 ‘파자마 패션’이 잠옷은커녕 입을 옷도 변변찮던 극도의 가난에서 탈출해 ‘봐라, 나도 잠옷 있다.’ 며 고급스런 잠옷 차림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니 어떤지 마음에 좀 짠한 느낌도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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