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한 미국 백인우월주의자가 텍사스주 주립교도소에서 독극물 주사방식으로 사형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와 관심 있게 보았다. 한동안 잠잠하던 미국사회의 인종혐오 테러 및 증오범죄 사건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21년전 그가 저지른 사건은 흑인남성을 심하게 구타하고 발목을 묶어 차에 매단 뒤 5킬로미터를 질주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끔찍한 인종혐오 범죄였다.
미국내 인종혐오 범죄는 그동안 쉬지 않고 이어져 왔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민자란 이유로 그동안 적지않은 소수민족 이민자들이 인종혐오 범죄의 희생을 당해 왔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는 눈이 째졌다는 이유 등을 들어 무시하거나 툭하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이 땅을 떠나라면서 소수민족을 괴롭게 하는 사례가 이따금 생겨난다.
더 위협적인 것은 인종주의나 종교적인 이유에서 오는 적대감이나 증오심이다. 지난 부활절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테러는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스리랑카 수도인 콜롬보 등 3개 도시 8개 지역 교회와 호텔 등지에서 벌어진 이날 총기난사 테러로 최소 240여명의 사망자와 약500명의 부상자가 속출해 전 세계가 경악했다. 극단적인 백인우월주의가들이 저지른 끔찍한 소행이다.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를 드리던 신도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50여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의 부상자를 낸 백인 우월주의자의 행위는 아직도 우리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당시 현장은 피바다로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는 게 한 목격자의 증언이다. 침략자들로부터 백인의 땅을 지키고 싶다는 내용으로 이 테러범이 작성한 선언문은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사건이후 IS(무장단체 이슬람국가)지도자 알 바그다디가 5년만에 동영상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들이 이 테러를 자행했다고 하면서 IS패전에 대한 보복전투는 최후의 날까지 지속된다고 위협, 앞으로 이들의 만행이 어디까지 갈지 걱정이다
스리랑카 테러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미국에도 샌디에고 인근 유대교 회당에서 총격테러로 인해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잇달아 실리콘 벨리에서도 증오범죄로 인한 테러로 8명이 다치는 사건이 있었다. 그나마 샌디에고 사건은 범인이 지닌 총구가 막혀 더 이상의 피해자가 없었다고 한다. 만약 그 총구가 열려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증오범죄는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흉악범죄이다. 그럼에도 증오범죄는 멈추지 않고 있다.
미연방수사국(FBI)의 집계결과 미국내 증오범죄는 2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증오범죄 피해자 10명중 6명은 인종 또는 민족과 관련한 편견이 작용한 범죄라고 한다. 또 종교관련 증오범죄 중에는 반유대주의 사건이 55%, 반이슬람 사건은 25%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미국사회를 뒤흔든 버지니아주 살라츠빌 유혈충돌 사건도 백인 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의 결산이었다.
우리는 갈수록 늘고 있는 증오범죄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이를 막아내고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인종이나 종교적 차이에서 오는 편견과 미움, 혐오나 증오심 등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없애 우리 사회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국제 엠네스티 뉴질랜드지부의 토니 블래킷은 “인종차별이나 인종증오를 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라. 불편한 대화에 적극 임하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표현을 성찰하라. 무엇을 반대하고 지지하는지 이야기 하라.”고 강조한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무심함에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무관심에 반대해야 한다. 증오와 불신에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 미국은 더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더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 전 대법관 서구드 마샬의 조언도 우리가 귀담아두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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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