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홈즈라는 대단한 여자가 있다. 올해 35세.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해 키신저, 슐츠 국무장관같은 백인 남성들로부터 9억 달러의 투자를 받아 실리콘 밸리에 테라노스(Theranos)라는 회사를 차리고 CEO로 앉은 여성 기업인이다. 스탠포드 대학을 다니다 그만두고 손가락 끝에서 뽑은 피 한방울로 암을 비롯한 200여 가지의 검사를 할 수 있는 기계 ‘에디슨’을 만들어 벤처기업을 차렸다고 했다. 0에서 시작해 단시간 내 8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억 대 자산가가 된 그녀는 테드 터크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실제로 애리조나 주에서는 전국에 8,000 개의 매장을 가진 월그린과 공조해 ‘에디슨’을 이용한 피검사를 시작했고, 이를 위해 그녀는 의사의 처방 없이 피검사를 실시하는 법 제정을 적극 밀기도 했다.
모든 매체가 흠모해 마지않던 이 여자가 몰락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녀에게 투자했던 국무장관 술츠의 집에서 그녀는 우연히 술츠의 손자와 만나게 되고, 이 사업에 매혹된 손자는 그 자리에서 인턴쉽을 신청했다. 그녀는 거절하고 싶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슐츠의 손자는 인턴쉽을 하면서 에디슨이라는 기계는 완전 무용지물일 뿐이고, 모든 검사는 회사 지하실에 숨겨진 종래의 기계들을 이용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손자는 이를 월스트릿 저널 기자에게 알렸고, 기자는 취재를 위해 애리조나의 월그린에 가서 직접 피검사를 했다. 그리하여 이 역대급 사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홈즈의 머리 속에서는 자신이 여자 스티브 잡스였다. 잡스가 드나들었던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셨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검은 색 터들넥을 입었다.
흥미로운 것은 요즘의 이런 과대망상인들의 신종 사기 수법이다. 우선 그들은 기업의 과제를 모든 사람들이 무척 바라는 어떤 것으로 잡는단다. (굵은 주사바늘에 찔리고 싶지 않은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한국판 유사 사건인 황우석 사태의 예에서는 불치의 병을 고치고 싶은 것이 모든 환자들의 바람이었다.) 거기에 보태 일반 사람들은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는 새 테크놀로지가 들어간다.
그래서 기업 비밀이라는 미명 아래 아우트라인 이외에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설득도 필요 없다. 곧 믿음의 영역으로 넘어가 투자를 하게 되는데, 믿음의 대상은 명문 대를 중도포기한 똑똑하고 폼 나는 CEO다. 먼 먼 미래에나 가능한 기술을 이 천재적인 인물이 앞당겨 실현한 것이니 이를 믿고 따라야 시대에 뒤지지 않는 것이 된다.
사실이 밝혀지고 세상이 모두 그들의 사기 행각을 알게 되었어도 그들에게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 그들은 모두 “내게 시간만 충분했다면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강변한다. 사회가 성급하게 결과물을 내어놓으라고 폭로했기 때문에 모든 일이 망쳐졌을 뿐, 그 꿈을 실현할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사기 사건 재판을 받고 있는 홈즈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재판에서 20년 징역형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그녀가 호텔 재벌의 아들과 이 달 초 전격적인 결혼을 발표한 것도 어쩌면 이 대단한 여자의 비상한 사기의 연장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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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국/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