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치매에 걸려서도

2019-03-14 (목)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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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한 달에 한 번씩 너싱홈 미사를 하러 가는 것이 나의 책임이다. 갈 때마다 너싱홈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다 모아놓는다. 대부분의 경우 치매노인들이 많다. 그분들과 함께 미사를 하는데 이게 참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미사를 하는데 아무도 따라 하는 이 없으니 이게 마치 나 혼자 하는 원맨쇼 같다. 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한다.

베드에 누워 계신 분, 휠체어에 앉아 계신 분, 혼자 알아듣지 못할 계속 소리를 내는 분, 몸을 계속 떠시는 할아버지, 미사는 여기서 하는데 정반대를 바라보는 할머니 등등이다. 혹시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시기나 할까 궁금해진다.

한 번이라도 치매환자들을 보신 분은 알겠지만 치매환자들만 모아놓고 하는 미사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참 기가 막힌 미사이다.


그래서 혼자 힘을 내어 나 혼자 독서도 하고 노래도 크게 부르고 내 할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성호를 긋자고 하면 놀랍게도 그들의 손이 같이 움직인다. 물론 제대로 그어지는 성호는 아니지만 어떻게 내말이 들렸는지 손을 들어 성호를 그으려고 한다.

영성체 시간이 되어 성체를 영해준다면 안 움직인 손으로 온 몸짓으로 얼굴로 성체를 모시겠다고 하신다. 이 노인은 도대체 안되겠지 하고 내가 건너뛰려고 하면 잉잉 소리를 낸다. 받아 모셔야겠다는 것이다. 아! 이 사람들이 그래도 내가 미사를 거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마음이 찡해지는 시간이다.

인간성을 다 파괴시킨다는 무서운 병인데도 그래도 신앙만은 어떻게 못하는구나. 치매에 걸려서도 따라 성호를 따라 긋고 평생을 실천한 신앙은 이렇게 드러난다. 신앙인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내 온몸을 갉아먹고 내 정신마저 마비시켜도 끝까지 내 신앙만은 어쩌지 못한다. 죽는 순간에 두려움으로 혼비백산 정신이 혼미해지고 흩어지더라도 끝까지 그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하느님 나라로 승천한다.

그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신앙의 줄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과 생명의 동아줄이다. 잡고 올라가야 한다.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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