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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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배우다

2018-06-27 (수) 최원국/뉴저지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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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이민자의 생활은 시간에 쫓기는 삶이었다.
쉬는 날이라고는 일요일 하루가 전부였다. 노는 날도 지난번에 미루다 만 일이 있으면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그런 날도 이리 저리 핑계 대고 뭉그적거리다가 하루를 허송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톱니바퀴같이 빈틈없는 생활에서 나는 드디어 해방 되었다.

얼마 전 나는 나이도 있고 하여 은퇴를 하였다. 별안간 시간 부자 되어 출근 시간에 쫓기어 허둥지둥 대며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평화로웠다. 얼마간은 나름대로 분주히 생활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답답하고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무의미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소일거리를 찾던 중 어느 날 먼저 은퇴한 친지가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심어 보라고 했다.

정성들여 부지런히 가꾸면 따 먹는 재미가 솔솔치 않다는 것이었다. 농사 지은 경험은 없지만 나 역시 꽃과 정원수를 가꾸는데 관심이 있었던 차라 채소를 심어 보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뒷 담밑 햇볕 잘드는 남향에 몇 년동안 잘 가꾸어진 잔디밭 한쪽을 마음먹고 파 엎었다. 가는 잔디 뿌리가 서로 엉켜 땅을 파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바람과 햇빛 잘 들고 빗물이 잘 스며들도록 도랑도 만들었다. 잔디만 무성하던 마당에 조그만 텃밭이 생겼다,

작지만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를 기쁘게 했고 나자신이 대견 스러워 보였다. 처음에는 손 안가고 물만 제때에 잘주면 잘 자란다는 고추, 깨, 토마토 모종을 사서 심었다 .
기르는 재미와 웰빙 유기농 채소를 먹는 것도 큰 보람이다 싶어 아침저녁 열심히 가꾸었다. 갓난아기 다루듯 정성드레 잡풀도 뽑고 물도 주었다.

내 하루 중 조그마한 일과가 생기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 보았다. 아침 일찍 텃밭에 나가 싱싱하게 자란 생명력을 보면 내 피부에 세포도 생기가 돌면서 침체된 내 삶에 활기를 불어 넣기도 했다.

그 중에서 시들시들한 채소들을 보면 아픈 내 손가락처럼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잘 살릴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면서 학창시절 책상에서 숙제하는 학생으로 나를 만들지만 그래도 그 시간은 즐거웠다

채소도 정도 이상으로 물이나 거름을 주면 허약하게 자라면서 열매가 부실해지고 또한 정도 이하로 무관심하게 내버려두면 제 몫을 다 못하고 자라지도 않았다. 그 동안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 지난 삶들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비록 조그마한 텃밭의 농사지만 실패하고 싶지 않아 최선으로 채소를 돌보다 보니 농사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관심을 가지고 알맞게 돌보고 알맞게 쳐주고 뿌리가 젖어들게 물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며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채소는 덜 받은 채소보다 더 실하게 자랐다. 오죽하면 자식 기르는 것을 ‘자식 농사’라고 할까?
일년 농사는 곡식을 심고 십년 농사는 나무를 심고 백년 농사는 자식을 키우라 했다. 이 작은 텃밭은 은퇴후 느슨했던 내 삶의 순리를 다시 알게 해 준 고마운 선생이었다.

<최원국/뉴저지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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