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브레이킹 뉴스’, 강 건너 불?

2016-07-19 (화) 노려 웨체스터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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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

또? 이제는 경찰 저격사건에 놀 날 기력도 없다.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는 건가, 멍하니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질 않았다.

어린 딸을 뒤에 태운 여자 친구 옆에서 옷이 피에 젖은 채 죽어가는 세인트폴의 필란도 카스틸의 모습은, 어쩌면 땅 바닥에 누어 가슴에 경찰이 쏘아대는 총알을 맞고 죽는 바톤 루즈의 알턴 스털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경악스러움을 달래기도 전에 달라스 경찰관 5명 사망 ‘브레이킹 뉴스’에 접한다.

장례식에 참석한 대통령의 간절한 말이 끝나자마자, 프랑스 리비에라 해변에서의 참사와 곧 이어 하룻밤 사이에 백여 명이 사망한 터키의 쿠데타 뉴스. 숨 쉴 새도 없이 또 다시 바톤 루주에서 세 명의 경찰이 사망한 브레이킹 뉴스. 피 비린내가 겹치고 겹치는 나날이다.


사실 그 뿐이 아니다. 여자 가수가 공연 후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며칠 후 49명이 사망한 올란도 게이 바 참사로 미디어에서 사라져버렸는데, 올란도 사건은 이어지는 경찰관의 잔인한 흑인 살해, 흑인의 경찰관 살해로 뒷전으로 물러났다.

카인과 아벨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라면, 성경 속의 수많은 살인사건과 전쟁, 서로 죽이고 죽는 그리스 신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트로이 전쟁, 그리고 십자군이며 100년 전쟁 등 온갖 종교전쟁을 거쳐 나치시대와 세계대전을 겪은 세상은 이제 ISIS의 잔인함에 이르렀다. 역사책이나 영화에서나 보던 일을 이렇게 생생하게 매일 매일 리얼리티 쇼처럼 대형 TV 화면으로 바라보자니, 이제는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솟아오를 지경이다.

언론에 소개되는 미 국민의 여론을 보면 새로 불거진 흑인만이 아니라 멕시칸이나 모슬림까지 인종간의 긴장과 또한 일반인의 총기소지를 두고 민중들의 의견들이 뜨겁기만 하다. 과연, 이런 시대에 우리 한국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뉴스에 범인들 보면 거의가 다 흑인이잖아요. 그러니 경찰이 그런 흑인을 볼 때 사람으로 보겠어요?’ ‘옛날에 LA폭동 생각이 나네요. 흑인들이 애꿎은 한인 타운을 다 불태운 거.’ 많은 한인들이 흑인에 대한 굳은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터키도 프랑스도 못 가게 되었다면서, 단지 여행지가 줄어 불편하다는 식의 반응도 있다.

한 교인은 목사가 온갖 테러와 증오 살인이 한꺼번에 터진 주간에 이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설교를 했다며, 교회가 세상일과는 구별되어야 한다지만, 미국 사회가 온통 인종간의 갈등으로 내전이 될까 긴장되어있는 상황에 그런 설교는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다고 말한다.

한인 이민자들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에도 흥분을 하면서 자기가 속해 있는 미국 사회의 심각한 현실에는 너무 모른 척 한다는 느낌이 든다. 어느 백인 여성이 자기 동네의 이민자들이 몰려 들어와 자기들끼리만 뭉쳐 살기 때문에 백인으로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마치 나치시대가 시작되거나 또는 세계 대전이 터질 것 같은 우려가 팽배해가고 있는 이 상황에, 우리 2세가 살아가야 할 이 사회가 정의롭고 평화스럽기를 바라는 의식적인 한 마디와 한 걸음을 할 수 있는 한인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노려 웨체스터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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