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2016-06-10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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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를 모르는 사람도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74)는 안다. 그가 한 가장 유명한 말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Float like a butterfly, and sting like a bee)이다.

평소 말빨이 센 그는 이 말도 경기 전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허세였지만 실제로 이 말이 먹혀 하나의 전술이 되었다고 한다. 현란한 스텝과 반사신경, 정확한 펀치, 정말이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면서 1965년 소니 리스턴에게 세계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았다.

무하마드 알리가 지난 3일 밤 9시10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타계했다. 그는 생전에 메디슨스퀘어 가든에서 많은 복싱 경기를 가졌었는데 7일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추모하고자 메디슨스퀘어 가든 인근 7애비뉴와 8애비뉴 사이 33스트릿을 무하마드 알리 웨이로 명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인타운 인근에 유명한 거리가 생겼다.


1942년 1월 17일 켄터키주 루이빌 태생인 알리는 통산전적 56승(37 KO) 5패로 근 20년간 활약하며 가장 유명한 복서였다. 그보다 전적이 화려한 선수도 다수 있지만 아무나 ‘영웅’, ‘위대한 사람’으로 불리지 않는다.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놓고 대중들은 알리에게 ‘영웅’ 칭호를 선사했다.

알리는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으나 식당에서 흑인이라고 거절당하자 금메달을 호수에 던져버린 뒤 프로로 전향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올림픽조직위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그에게 새로운 금메달을 증정했다.

이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알리의 모습을 보았었다. 커다란 글러브를 끼고 링위에서 펄펄 날던 그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러나 신념에 차 있는 순진한 눈으로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알리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느니 흑인을 차별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며 입대 거부를 하다가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했다. 그는 법정 공판에서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데 남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라고? 베트콩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우릴 무시한 적이 없다. ”고 당당히 주장,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말콤 엑스를 만나 1975년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본명인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바꿨다. 사회인권운동에 적극 참여한 그는 2005년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도 받았다.

알리는 떠벌이, 수다장이 등 여러 별명으로 불리지만 적어도 자신의 이름에 대한 책임을 졌다. 본인이 파킨슨병으로 30년 이상을 고통 받으면서 같은 병을 앓는 환자, 불우어린이, 소외된 이웃,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모임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여했고 후원에 힘썼다.

사람이 세상에 왔다 가면서 어떤 흔적을 남기고 가야할 까. 평범한 사람들은 무색무취,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가 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세상에 이름을 얻은 사람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한국사람 중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많다. 공직자, 정치인, 기업과 단체대표, 법률가, 의사, 화가, 음악가, 연예인 등등 굳이 그 이름을 일일이 들지 않아도, 그 이름이 허명이 아니라면 이름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한인 출신으로 굳이 ‘영웅’ 칭호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요즘 한국에서나 뉴욕에서나 허영이나 탐욕이 지나쳐 자신의 이름이 ‘오명(汚名)‘이 되어버린 자들을 종종 본다. 자신의 이름에 누가 될 일은 생각도 말고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이름을 잘 보존하면서 살다가 갈 때가 되면 이름값과 어울리는 흔적을 남기고 가기 바란다.

자신의 몫보다 더 책임지고 가면 더 좋고. 국민의 신망과 인기를 얻었다면 누구나 공인(公人)이다. 어느 자리에서건 자신의 이름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바란다. 그래야 상쾌한 공기가 우리 같은 사람이 숨쉬기 편하지 않겠는가.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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