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젖과 꿀 그리고 알

2013-03-21 (목)
크게 작게

▶ 강 신 용 <공인회계사, 수필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 선출되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수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연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에 알려진 새 교황은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다. 혼자 밥하고 버스 타고 외출하는 적당히 가난한 사제가 교황으로 오셨다니 모두가 놀랐다. 그의 연설 속에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의 유머와 함께 하늘의 이야기가 땅 위의 우리들 가슴으로 내려온다.

가나안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고 했다. 우리 한인 동포들은 미국이 가나안 땅이라고 믿고 찾아 왔다. 고향 땅을 떠나 맨손으로 기회의 땅이라니 두려운 마음으로 어린 아이 손잡고 왔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만 하다가 뒤돌아보니 어느덧 십수년이 지났다.

생각도 변하고 생활 패턴도 이곳에 맞게 바꾸며 살아간다. 아침상에 구수한 된장찌개와 흰 쌀밥은 엄두도 못 낸다. 우유나 커피 한 잔 그리고 계란 프라이로 간단히 해결한다. 아침은 왕처럼 푸짐하게 저녁은 거지처럼 적게 먹어야 건강하다고 하는 데 쉽고 편안한 양식에 익숙해졌다.


그 옛날 가나안 땅에서도 소나 양을 키우고 젖과 고기는 사람들의 식품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유를 마시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치즈나 버터 또는 요구르트 같은 우유로 만든 식품은 우리의 생활에 너무나 일상화 되었다. 우유는 엄마의 품처럼 맵지도 짜지도 않은 편안한 음식이다.

꿀도 우유만큼 건강한 자연식품이라고 한다. 일벌이 낮에 꽃의 수액을 집으로 가져다 밤에는 끊임없는 날갯짓과 수십 회에 걸친 되새김질을 하면서 숙성시킨 꿀은 1kg을 만들기 위해 약 560만 꽃송이를 방문한다고 한다. 가나안의 땅은 땀 흘려 일한 사람들에게는 꿀과 같이 달콤한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고의 자연식품 세 번째는 계란이다. 닭은 시골 촌사람 같은 동물이다. 어둑어둑 해지면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집으로 돌아오는 식구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해가 저물면 둥지에 들고 해뜨기 직전 홰치며 세상이 밝아 오는 하늘의 소식을 알린다. 어서 어서 일어나 일하자고 농사꾼도 깨우고 자신도 온 종일 먹이를 쪼며 알 낳을 준비를 한다.

닭은 살림밑천이다. 유기농 촌닭은 일 년에 200여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요즘 미국 직장에서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 휴가까지 놀고 나면 약 200여일 일하게 된다. 마켓에서 파는 계란의 엄마는 1년에 300개 정도를 낳는다고 한다. 생산량이 높고 알도 크고 때깔도 좋은 것이 양계장에서 태어난 계란이다.
이민 초기에는 한 주에 하루 쉬고 300여일 일했다. 지금을 늙고 지쳐서 뒷전에 있으나 맨 손으로 한 밑천 만들다가 여기에 도달했다. 어린 자식 공부시키랴 초가삼간 내 집이라도 마련하랴 쉴 새 없이 와보니 오늘에 내가 여기 서있다.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공부하며 자신이나 자식 위해 일벌처럼 열심히 살았다.

새삼 뒤돌아보니 이민의 나라, 미국은 성경에서 나오는 가나안 땅과 너무나 비슷해 보인다. 닭의 홰치는 소리 대신 알람으로 새벽을 깨우고 밤늦게 스트레스에 지쳐 돌아오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 척박한 땅, 가나안의 땅에서 일하던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음 속의 젖과 꿀은 무엇일까. 마음 속의 가나안 땅은 무엇일까. 새 교황을 찾기 위해 세상의 끝까지 갔다고 했지만 교황의 겸손한 한 마디 “로마의 주교”라고 자신을 낮추면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I CAN’이라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 어둠이 내리는 지금 지나온 모든 것에 감사한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사는 교황의 모습에서 마음 속의 가나안 땅이 보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