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 오는 아프리카(3·끝)

2011-12-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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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하는 삶

이원철 선교사님을 못 본 2년 사이에 그분은 케냐 시민이 되어 있었다. “크리스천 학교는 하나님의 사업이지만 외국인 신분으로는 꾸준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정부가 비자를 내주지 않으면 언제라도 접고 출국을 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데 따른 현실적 불편을 따지지 않고 그분은 케냐 시민으로 귀화했다.

그러고 보니 가난한 현지 주민들과 똑같이 하루 한 끼 식사에 날마다 햇빛에 그을리며 일을 한 탓인지 아프리카 부족 사람처럼 생긴 것도 같다. 처음 그 땅에 발을 디딘 이래 지난 15년 동안 한 번도 안식년을 가지지 못했다.


‘이제 그만하면…’이라며 편안한 휴식을 권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분은 “주님도 안식년이 없었는데요…” 하며 웃는다. 누군가가 염려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위험한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이라도 잃으면 어쩝니까?” 물으니 이번에도 웃으며 대답한다.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순교는 아무나 시키시나요?”

이번 일정은 하루하루 강행군이었다. 건축 팀으로 일하신 목사님이나 다른 분들에게도 고된 노동이 이어졌다. 학교는 에티오피아와 케냐 국경의 모얄레 지역.

정부로부터 20에이커를 불하받은 이후로 거쳐야 했던, 사람의 눈에는 불가능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모든 과정, 그 많은 사연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다 쓰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정도다.

허허벌판 사막과 같았던 빈 땅에 지금은 교실과 기숙사까지 14개 건물이 들어섰다. 나는 밤이면 지쳐서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음날을 걱정하였다.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여기까지 와서 병이 나면 하나님 체면이…’

그러나 지친 몸을 기댄 외벽집 바로 옆으로 하이에나가 울고 지나가는 밤이 새고 아침이 오면 우리는 언제 누웠었느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새벽 경건회를 가진 다음 다시 각자 일터로 갔다.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내가 한 일이라고는 두 눈을 감고 잠을 잔 것뿐인데…. 그 사이에 몸이 혼자 알아 무슨 일을 한 것일까? 나의 등 뒤에 계시는 그분?

찜통 같던 교실 하나에 천장이 완성되었다. 바깥에 있다가 들어가면 당장 서늘한 것을 느낀다. 마땅한 툴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환경에서 아주 깔끔한 교실이 완성된 것이다.


언젠가 직업학교를 만들어 소질이 보이는 학생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고 목사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신다. 정수기 만드는 일에 열심을 다했던 분은 앞으로 주민 전체가 마실 물의 근원이 될 수 있도록 우물을 파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꺼내놓는다.

어느새 LA로 돌아갈 날짜가 다가왔다. 마지막 밤. 케냐인이 된 선교사님 부부와 작별인사를 한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우리는 잠깐 왔다가 떠나 다시 푹신한 침대와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가 문 앞에 늘 준비되어 있는 도시로 귀환할 것이다.

깜깜한 밤하늘과 머리 위로 손을 뻗치면 잡힐 듯 가까운 별빛, 그러나 마주앉아 한국말을 써볼 사람도 아무도 없는 곳에 우리는 선교사님 부부 두 사람을 덩그마니 남겨놓고 눈으로만 작별을 했다. ‘기도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하루 종일 기도를 해요’라고 말하던 사모님의 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내가 가까스로 소리를 내어 말했다. “내년에… 또 올게요…”


김범수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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