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 2세들에 ‘족쇄’… 공직 진출·취업 등 피해 속출하는데,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안’ 발의조차 못했다

2025-07-15 (화) 12:00:00 노세희·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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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상실제’ 시급한데 초안 제기후 감감무소식

▶ 이재명 정부도 무관심
▶ “한인 절박성 외면” 질타

미국 등 해외 출생 한인 2·3세들의 공직 진출과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약해 온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을 위한 초안이 지난해 말 마련됐음에도 이후 7개월이 지나도록 국회 발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한국 정치권에 대한 한인들의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적법 일부개정법률안 제14조의2 조항 신설 초안을 국회 입법조사처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해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해외에 주된 생활 근거를 둔 사람의 경우, 국적 선택 시한을 넘기면 출생일로 소급해 한국 국적이 자동 상실되도록 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이후 아무 진척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미 전역에서 출생 당시 부모가 영주권자였던 한인 2세들은 복수국적 문제로 공직 임용, 정부 신원조회, ROTC 혹은 사관학교 지원 등에서 족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ROTC에 지원하려던 대학생 아들을 둔 A씨는 “한국 정치인들은 미국에 와서 번지르르하게 ‘동포를 위하겠다’고 말만 하고 돌아가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며 “선천적 복수국적의 족쇄를 풀어달라는 호소가 10년이 넘게 묵살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을 추진해 온 전종준 변호사는 “국적상실제 부재로 피해를 입는 한인들의 상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개정안에 대해 중국 동포의 반대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중국은 애초에 이중국적을 금지하고 있어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국회가 재외동포에 대한 기본적 관심조차 없고, 근거 없는 포퓰리즘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 변호사에 따르면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적 자동상실제가 적용돼 복수국적 대물림 병폐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재외동포 정책의 주요 과제들이 구호에만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재외선거 우편투표제 도입 ▲재외동포 차세대 육성 확대 ▲해외 사건·사고 대응체계 선진화 ▲온라인 영사민원 시스템 개선 등을 약속했지만,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은 공약에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한인사회 일각에서는 “재외동포 표심을 얻을 땐 화려한 약속을 하고도 정작 한인들의 가장 절박한 과제는 외면한다”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지난 제21대 국회에서도 무소속 김홍걸 의원이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안의 초안을 마련했으나 공동발의 요건을 채우지 못해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전종준 변호사에 따르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대표 발의를 할 국회의원이 필요하고, 10인 이상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법안이 발의되어야 비로소 국회에서 법률안 심의과정이 시작되고, 전 세계 한인 단체가 법안 통과를 위한 청원이나 로비를 전개할 수 있게 된다.

전 변호사는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처럼 글로벌 국가들이 복수국적자의 권리를 좁히고 있다.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재외동포의 고충을 해소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국회와 정부의 즉각적 행동을 촉구했다.

■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이른바 ‘홍준표법’으로 불리는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지난 2006년 원정출산에 따른 병역기피를 방지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1983년 5월25일 이후 해외에서 출생한 한인 남성에게는 아버지가 한국 국적자일 경우 한국 국적이 자동 부여되고, 1998년 6월14일 이후 출생자부터는 출생 당시 부모 중 1명라도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다면 자녀는 자동으로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된다.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국적이탈을 마쳐야 하며, 이를 놓치면 남성의 경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 38세가 되는 해 1월1일까지 20년간 병역의무 대상자가 된다.

<노세희·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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