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희망을 포기한 자의 말

2008-06-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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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논설위원)

다른 동물들은 운명대로 살아간다. 그러다 죽는다. 자기의 길을 개척하거나 스스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요즘 흔하게 사람들의 말과 글에 오르내리는 소를 봐도 알 수 있다. 송아지로 태어난 소는 어미의 젖을 먹으며 자라다 사육된다. 사육돼 키워지면 30개월 전에 도축장에 끌려가 사람의 먹이로 죽어가야만 한다.

소는 30개월이 넘으면 사람의 먹이로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광우병, 즉 ‘미친소병’에 걸릴 수도 있다하여 그 쇠고기를 사람이 먹으면 사람도 미친소병에 걸린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이 ‘미친소병’에 걸려 죽을 확률은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이렇듯 쇠고기가 되어 사람의 먹이로 전환되는 소의 운명을 ‘소팔자’ 혹은 ‘쇠팔자’라 불러도 괜찮을까.


‘온유월에 개팔자’란 말도 있다. 개를 보면 소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긴 하다. 강아지로 태어나 30개월이 지나지 않아도 사람의 먹이로 죽어가진 않는다. 이것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태어난 개들의 운명이다. 먹을 것이 부족한 지역에서 태어난 개들의 운명은 소나 다름없이 어느 정도 자라 통통해지면 사람의 먹이로 바뀐다.

아무리 선진국에서 태어난 개라해도 개 자체가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나가지는 못한다. 주인이 먹이를 주면 먹고, 끌고 다니면 끌려 다녀야 한다. 사람의 먹이사슬로 죽어가지는 않지만 죽을 때까지 주인이 시키는 데로 하며 주인에게 충성되이 살아가는 것이 ‘개팔자’다. 그나마 ‘쇠팔자’보다는 ‘개팔자’가 낳은 편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는 운명이다. 태어나는 것을 어떻게 할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 그렇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여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결과로 아기가 잉태된다. 잉태된 아기는 어김없이 때가 되면 세상으로 나온다. 개나 소의 새끼가 아닌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축복된 운명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모두 사람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게끔 만들어져 있는 허술한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태어나 자라는 환경에 어느 정도 영향은 받으나 그 환경에 적응하거나 극복하여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게끔 만들어 진 것이 사람이다. 이처럼 사람은 다른 동물들처럼 운명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운명과 팔자를 바꾸어 가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운명과 팔자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그 무엇이 사람에게는 분명히 있다. 사람은 개처럼, 소처럼 주면 먹고 때 되면 자고 죽어야만 하는 동물과는 다르다. 생태학적으로 사람의 몸은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지만 사람에게는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과 머리가 있다.

어떤 역경에서도 그 역경을 이겨나갈 수 있는 희망을 갖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팔자 시간문제’란 말이 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요 팔자란 말일 것이다. 아프리카 케냐의 아버지 피를 타고난 버락 오바마가 졸지에 대 미국의 민주당대통령후보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버락 오바마가 ‘벼락 오바마’가 되었다. 경선 초기,
힐러리와 오바마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누구나 힐러리가 대선후보가 될 줄 믿었었기에 그렇다.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40대의 오바마 모습은 하늘을 찌른다. 흑인인 그를 중심으로 백인의 노정객들이 둘러앉아서 그의 말을 경청하는 뉴스를 볼 때, 정말 사람팔자 시간문제 같음을 실감할 수 있다. 부시가 이끄는 8년 동안의 공화당 정치에 식상한 미국 국민들이 ‘변화’를 내 걸고 대선에 나선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지 말라는 법칙은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계도 희망이 있어 보인다. 한국 사람이라고 대통령되지 말라는 법칙도 없기에 그렇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한국계가 되어 대통령에 선출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이렇듯 사람의 운명과 팔자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지만 그 운명과 팔자를 변화시켜 나갈 힘은 사람에게 주어져 있다.

오늘 우리에게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 있다 하더라도 결코 내일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어려움과 혹은 즐거움을 운명이 만들었다고는 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기쁨과 복락이 함께 하고 있다면 지난 과거동안 피나는 노력과 모든 관계에 대한 처세를 잘해 왔음이지, 운명이 즐거움을 허락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나쁜 운명 같은 일이 있다 해도 개척해 변화시켜 나가면 된다. 하기 나름이다. 다른 동물들은 운명대로 살다 그대로 죽는다. 태어난 것은 운명이지만, 사람만이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 “팔자소관”. 희망을 포기한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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