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고유가시대 극복 운동

2008-06-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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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지속적인 경기침체에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주택시장 불안과 신용위기가 미국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소비지출까지 위축되는 상황에다 이제는 유가파동까지 겹쳐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까지 악화되면서 한국은 물론, 이곳 한인 커뮤니티도 그 충격의 여파로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로 인해 현지 자영업을 하던 한인업주들 가운데는 치솟은 렌트비에다 가게나 집, 건물의 모기지를 감당하지 못해 은행으로부터 차압을 당하거나, 아니면 거의 시중보다 싼 값으로 가게나 부동산을 급하게 처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주변의 지인 중에도 이민 와서 약 20여 년간 열심히 일해 집도 장만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는데 집을 담보로 해 보다 큰 가게를 차렸다가 경기가 너무 부진해 결국 모기지를 감당하기 어려워 가게와 집을 팔아 은행 빚을 갚고 거의 빈손으로 다시 새 출발한다는 심정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또 60대인 어느 지인은 아무리 열심히 가게를 해도 힘만 들지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어 차라리 직장을 다니는 편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에서 가게를 팔았다. 그리고 막상 직장을 얻으려고 해보았더니 아무도 그를 고용하려 들지 않아 그는 현재 걱정을 태산같이 하며 집에서 놀고 있
다.같은 동네에 사는 또 한 한인부부는 흑인 촌에서 한 때 옷가게를 하며 장사를 그럭저럭 잘 해왔는데 지금은 턱없이 오른 렌트 비에다 매상이 너무 줄어 그만 가게를 닫고 다른 것을 해보려고 애를 쓰고는 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것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들은 노는 동안 한 때 열심히 일해 벌어놓은 쌈짓돈을 렌트비에다 생활비다 하며 벌써 다 써버려 이제 수중에 남은 돈은 하나도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마땅한 직업을 갖지 못해 집에서 노는 집안의 가장들이 지금 한인사회에 한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국도 부양할 가족이 있음에도 변변한 일거리 하나 없는 가장이 지난 연말 통계결과 2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갈수록 건강해지는 노인조차 일거리가 없어 견딜 수 없다고 하는데 가족의 부양을 책임진 가장들의 이런 실태는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이들은 일하기 싫어서 백수로 노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마땅한 일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놀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가장들의 경우 전문기술이 없는데다 언어가 부족하고 나이까지 들고 하다 보니 하다못해 노동 자리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주가도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미국의 경기침체는 언제까지, 앞으로 얼마만큼 더 지속될런지 모른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사는 미국의 경제는 앞이 안보일 정도로 어둡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너무 어려운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밖으로는 모두 멀쩡한 것 같지만 사실 깊숙이 들어가 보면 대부분이 다 상처투성이인 상태다.

성경에 나오는 아람왕의 용사 나아만 장군은 겉으로는 대단해 보였지만 막상 장군 복을 벗으니까 아무 것도 아닌 보통사람이고 나병환자였다. 우리도 알고 보면 마찬가지로 나만 장군과 같은 처지가 아닐까. 표면으로는 모두 잘 포장돼 근사한 것 같이 보이지만 감추어진 모습을 벗겨놓으면 너나 나나 아무 것도 아니요, 예비 장애인인 게 우리의 실제 모습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인들이 하는 가게에 나가 보면 쉽게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려울 때 우리가 서로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으고 힘을 모은다면 더 쉽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한인사회에도 좀 가진 자들이 모여 힘겨운 사람을 도와주는 캠페인이라도 일어나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 가진 것을 좀 내놓아 형편이 너무 어려워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아니면 잡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거나 불황 타개 방법을 함께 생각해 보는 등, 경제적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운동이 일어난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훈훈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몽당연필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고 소금을 조금만 넣어도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삶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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