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정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힘

2008-06-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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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뉴욕 차일드센터 아시안상담 클리닉 임상심리치료사)

최근 필자는 우연히 미국 ABC방송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20/20의 공동 앵커, 존 스토셀(John Stossel)이 쓴 ‘사람들이 잘 하고 있는 점을 보아라’라는 제목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저명한 언론인이기에 앞서 프린스턴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경력답게 자녀관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호소력 있게 피력한 글이었다.
과거에 그는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여느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들이 ‘잘하고 있는 점’보다는 ‘잘 못하고 있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된 존은 지난 2007년부터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내어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코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 숙제도 하지 않고 말썽만 부려서 실컷 혼나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피곤한 아빠를 그냥 쉬게 내버려둬서 고맙구나” 바쁜 일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을 때에는 늘 전화를 해서 한 가지라도 긍정적인 말을 해주었더니 어느 순간부터 말썽꾸러기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결국 자녀들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대인관계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털어놓았다.

가정상담 전문가들은 이 긍정의 힘이 부모-자녀관계 뿐만 아니라 결혼생활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을 조언하고 있다. 오프라 쇼와 굿모닝 아메리카 등에 출연하며 유명해진 가정상담 심리학자 존 갓맨(John Gottman)박사는 “사람들이 결혼생활 속에서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코멘트와 부정적인 코멘트를 5 대 1 정도의 비율로 사용한다면 결혼생활이 훨씬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부부들이 서로에게 긍정적 언행을 사용해 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자녀문제나 부부문제로 찾아오는 내담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하나같이 서로의 흠과 과오를 찾아 비난하는 데에 시간과 정열을 쏟는 소위 ‘부정적 사고’의 소유주들이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부모들에게 자녀들에게 칭찬을 한 적이 언제인지, 그리고 부부들에게 상대방에게 사소
한 것이라고 칭찬해본 적이 있는지 질문해 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아니 칭찬할 게 하나라도 있어야지요”

최근에 한 남자 청소년을 상담한 적이 있다. 여느 사춘기에 있는 청소년들처럼 감정 기복도 심하여 부모와 종종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고 자기가 맡은 일을 잘 처리하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문제아도 아닌 아주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몇 주 전, 이 청소년은 공부를 썩 잘하진 못해도 글을 잘 쓰는 재능이 있어서 어느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온 적이 있었다. 시상식에서 상패를 받아온 아이에게 부모가 빈정대는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까짓 상금도 없는 상패를 받아서 뭐에다 쓰냐?” “공부나 잘 하고 대들지나 말 것이지” 그 날, 이 청소년은 받아온 상패를 구석에 내팽개치고는 “다시는 부모님과 대화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사실, 모든 인간에게는 동전의 양면 같은 속성이 있기 마련이다.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운동을 잘할 수 있을 것이고, 남편이나 아내가 말이 없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최소한 심한 잔소리는 늘어놓지 않을 것이다. 칭찬할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 칭찬할 거리를 찾지 못하는 부
정적 사고와 태도에 문제가 놓여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자녀와 배우자의 잘못과 부족한 점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면 불쾌한 언쟁과 소모적인 싸움은 끊이지 않게 된다. 대신, 상대방의 긍정적인 점에 초점을 맞추어 사소한 것이라도 칭찬하고 인정해주기 시작할 때에 가정 속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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