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촛불 시위를 보면서

2008-06-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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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뉴저지 놀우드)

이번 촛불 시위의 시작은 예민한 여중생들이 광우병의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시작되었고 그에 대한 이명박 정부와 그를 지지하는 보수 신문들의 처음 반응은 ‘광우병이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왜 난리냐 ‘였다.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은 맞는 말이라고 본다. 그래서 아직도 촛불 시위의 본질이 광우병에 대한 비이성적 반응이라는 시각이 많이 있다. 그러나 촛불 시위가 확대되고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은 광우병의 위험이 전혀 없다라고 잘라 말할 수가 없다는 점도 있고 한국인들이 먹게 될 부위나 소고기의 종류가 미국민들이 먹
는 소고기와 꼭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요인은 ‘왜 그걸 돈 주고 사먹는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논쟁을 해야 하느냐 하는 점’이라고 본다.


즉, 촛불 시위의 주 동기는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이번 일이 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미국 정부에 대하여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저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반미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친하게 지내고 싶지 굽실거리는 대가로 친하게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 자존심이 상한 두번째 이유는 집권 보수 세력의 일반 국민에 대한 태도가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들이 뭘 안다고 숫자만 믿고 떼를 지어서…” 하는 깔보는 태도에 있다고 본다. 보수 논객들이 자주 쓰는 포퓰리즘이라는 말 속에 이런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사실 일반 대중들은 우매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번 촛불시위에서 대중의 모습은 그렇게 우매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중간의 의사 소통이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긴밀해 졌고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함과 동시에 토론을 하여 중지를 모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는 켜지고 꺼지는 아주 단순한 기능을 가진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단순한 세포 수천억개가 모여 서로 긴밀히 협조하며 일하기 때문에 엄청난 일을 해낸다. 인터넷을 포함한 통신 기능이 대중을 현명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잘 하면 재미동포와 미국국민들은 촛불시위 덕분에 더 안전한 음식을 먹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의 언론들은 한국의 촛불 시위를 보도하면서 ‘정말 미국 쇠고기가 안전한가’라고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즈에서 폴 크루그만은 미국 농무부가 농축산업자들의 로비 때문에 쇠고기는 물론 다른 음식들의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농무부는 심지어 한 축산업자가 자기가 생산하는 소고기는 전량 광우병 검사를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것도 못하게 막고 있다고 한다.

촛불 시위가 한국 역사에 정말 멋있게 남으려면 끝이 좋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쇠고기 문제에 대하여 성의있는 해결책을 낸다면 더 이상 다른 이슈로 끌지 말고 깨끗하게 끝낸 뒤 이명박 대통령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본다.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미워도 다시 한번 밀어주자’고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물론 이번 촛불 시위에서 보여준 참여와 토론의 문화는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보수층들은 강력한 지도자의 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일사 분란하게 따라가는 국민들이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은데 난 소시민도 발언권과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정말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한국은 벌써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민주주의를 가진 나라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촛불 시위가 아니라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을 축하하는 촛불 잔치를 열어야 할 때가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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