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밀어부쳐’와 ‘한 방’만으로는 안된다

2008-06-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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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오(우드사이드)

흐르는 물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산골짜기나 평지에 흐르는 자그마한 ‘내’가 있고 어떤 말(고유, 보통명사)에 붙어 ‘내’의 의미를 나타태는 천(川)이 있고, 천이 모여 강(江)을 이룬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내’나 ‘천’에서는 무자맥질과 미역을 감고 망태나 족대(반두)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으나 강에서는 미역 대신 수영을, 망태나 족대 대신 낚싯대나 투망(배를 타고)으로 고기를 잡는다.

그리고 ‘천’은 지자체에서 보호관리 감독하고 강은 정부에서 관할하며 이들을 전부 합쳐 부를 때는 하천이라고 한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당시 청계천 복원공사 하나로 일약 영웅이 되었고, 이것을 발판으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수 있었고 그 여세를 몰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특유의 ‘밀어부쳐’ 정책으로 복원공사를 완료했고 이 한 방으로 영웅이 된 것만은 사실이다.


지난달 2일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때마침 6.10 항쟁 21주년을 맞아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규탄 촛불시위(13만명) 이후 최대 규모(15~20만명)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미흡한 고유가 안정화 정책으로 전국 화물연대, 건설기계 노조,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흑 정국이 되었다.

처음에는 ‘쇠고기 수입 반대’만을 외치더니 ‘쇠고기 재협상’을,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백만명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서 머무나 했더니 급기야는 ‘정권 퇴진’으로까지 확산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구호는 점점 과격해져 경제를 파탄시켰다는 노정권 하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자유당 정권 이후 처음 보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10조원에 달하는 세금 감면으로 개인당 연간 6만~24만원까지 환급해 준다는 고유가 대민생 종합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으나 국민들은 지극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사실 이는 내가 낸 세금 내가 다시 돌려받는 ‘소경 제 닭 잡아먹는’ 놀음이요, 민생에 별 도
움이 안되는 ‘언 밭에 오줌 누는 격’이다. 이는 민생 종합대책도, 그렇다고 경기부양책도 아닌 그저 한 번 먹고 쓰는 소비 촉진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매사가 이러니 국민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대운하에 대해서도 확고한 언급이 없이 미적거리고 있음을 볼 때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한 가지만이라도 국민의 마음 속을 꿰뚫어줄 단안을 내려야 함에도 눈치만 살피는 듯 하는 대통령이 밉기까지 하다.

언필칭 매사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고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되뇌이면서도 국민의 60%가 대운하를 반대하며 전문가나 교수들도 떼를 지어 반대하고 있는데도 민심의 소재 파악도 못했는지 ‘국민이 싫어하면...’ 운운하면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이것은 보나마나 쇠고기 파동이 끝날 때까지 끌고 가다가 때가 되면 청계천 복원공사처럼 ‘밀어부쳐’로 대운하를 파놓고 ‘봤느냐? 나의 위력을!’ 이러려는 꿍꿍이 속을 모르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민심을 역행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번 개각 때 대운하 맹신론자인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을 해임시켜 대통령의 의중을 확고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대운하 포기를 공식으로 선언하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대운하 논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국민과 정부간 괴리는 더 커져만 갈 뿐이다. 대통령은 현재 자신의 지지율이 20%에도 못 미치는, 그리고 75%가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더욱 겸손해야 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밀어부쳐’와 ‘한 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청계천 기적(?)’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국정(國政)과 시정(市政)을 혼동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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