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성씨 영문표기 유감

2008-06-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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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성씨는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상식이다. 전통과 관습을 중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미국에 이민 온 동포들이 자기 성씨를 영문으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자의든 타의든 자기 임의로 표기해 자기 대에서 새로운 조상을 만들고 많은 혼란과 문제를 빚어내고 있다.

김씨는 ‘Kim’을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Gim’ ‘Geem’도 가끔씩 보인다. 한국 발음대로 쓰자면 ‘Gim’이 맞을 듯하다. 초기에 한국에 온 미국인들이 자기네들 좋을대로 거센 발음을 썼고 우리도 따라 쓰다가 ‘Kim’이 일상화 됐을지 모른다.


거센 발음의 영문표기 잘못은 조씨가 ‘Cho’로, 정씨는 ‘Chung’으로, 고씨는 ‘Ko’로, 주씨는 ‘Chu’로, 강씨가 ‘Kang’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이씨는 ‘Lee’ ‘Yi’ ‘Ree’ ‘Rhee’ ‘Li’ 등 여러 성씨로 쓰고 있다. 한글 두음화 법칙에 따르면 ‘Yi’가 맞는 표기이다. 그러나 ‘Lee’를 가장 많이 쓰고 있다. 두음화에 따라 혼란을 드러내는 성씨가 많이 보인다. 나씨는 ‘Na’ ‘Nah’ ‘Ra’ ‘Rah’ 등으로 쓰고 노씨도 비슷하게 ‘No’ ‘Ro’ ‘Noh’ ‘Roh’로 표기하고 있다. 임씨는 ‘I
m’ ‘Lim’ ‘Yim’ ‘Limb’ 등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이 보인다.
독일어 문법에는 모음 다음의 ‘H’가 묵음화로 발음을 안 한다. 언제부터 우리의 성씨에 H를 넣어 멋을 부렸는지 모를 일이다.

오씨는 ‘O’ 하나 쓰기가 허전해서 ‘Oh’로 쓰는 것을 봐 줄만 하다. H를 넣어 멋을 부린 성씨에는 An-Ahn, Na-Nah, No-Noh, Jo-Joh, Ko-Koh,
Ha-Hah 등이 많이 보인다.박씨는 ‘Park’를 일반적으로 많이 쓰고 있다. 박씨는 미국에 와서 ‘공원’이라는 좋은 이름을 가지게 되어 다행이다. 박씨는 이외에도 ‘Pak’ ‘Bak’ ‘Bark’ 등을 쓰고 있다. Park
는 본토인들이 ‘팩’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유감이고 Bark(짖다)는 사전을 한 번 찾아보고 사용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의 성씨 표기가 영어단어의 뜻과 중복되는 어려움이 있다. 신씨는 ‘Sin(죄)’ 보다는 ‘Shin’이 나을 것 같다. 손씨도 ‘Son(아들)’ ‘Shon’ ‘Sohn’ 등을 사용하고 문씨도 ‘Moon(달)’ ‘Mun’ 등 표기의 어려움이 보인다.

한국 성씨의 영문 표기에는 모음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어려움이 보인다.
정씨는 ‘Chung’ ‘Chong’ ‘Cheong’ ‘Jung’ ‘Jeong’ 등 가장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최씨는 ‘Choi’ ‘Choe’, 배씨는 ‘Bai’ ‘Bae’, 백씨는 ‘Paik’ ‘Paek’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Chun’은 전씨와 천씨가 함께 사용하고 ‘Pak’은 박씨와 백씨가 같이 쓰는 혼돈도 보였다. 유씨와 류씨는 한국에서도 다른 성씨라 영문 표기도 유씨- ‘Yoo’ ‘Yu’ ‘You’로 쓰고 류씨- ‘Ryu’ ‘Rhyu’ ‘Ryou’ ‘Rieo’ 등으로 구분하여 쓰고 있다.

한국 여권에는 결혼한 부인의 성씨 옆에 남편의 성씨를 병기하여 쓰고 있다. 이 여권대로 미국에서 모든 증명서(ID)를 만들면 두 성씨를 나란히 쓰는 새로운 복합 성씨를 만들어내어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이러한 성씨 표기의 혼란이 정리되지 않고 방치된 채 오랜 시일이 흐르면 같은 형제가 다른 성씨로 표기했을 경우 그들의 자손이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남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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