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8-06-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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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음식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는 그 음식의 재료에 따른 것도 아니오, 또한 몸에 좋은 재료냐 아니냐에 따른 것이 아니라 맛에 달렸다. 별로 신통하지 않은 지료로도 맛을 잘 내면 음식을 잘 하는 쪽이 되며 ‘우와!’하는 감탄사가 나오고, 아무리 좋은 재료를 가지고서도 맛을 내지 못하면 음식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솜씨라 심하면 ‘?땜!’ 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다.결국은 맛이다. 사람의 작은 혀에는 짜고, 달고, 시고, 맵고, 쓴 맛의 오감을 감지하는 기막힌 재주가 있는데 그 혀가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서 몸에 좋지 않다는 조미료도 쓰고, 맛에다 맛깔스러운 색깔까지 내기 위해서 심지어는 여러가지 색도 음식에다 쓴다. 맛 때문이다.

이것저것 다해서 반찬 맛, 돈 맛, 좋은 옷 입는 맛, 좋은 차 타는 맛, 여행가는 맛, 구경하는 맛, 돈 버는 맛, 출세하는 맛, 칭찬듣는 맛, 화풀이하는 맛, 쓰는 맛, 으쓱대는 맛, 사는 맛... 무엇이든지 맛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평생 따라다니는 그 맛에는 좋은 맛과 싫은 맛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돈 주고 사먹는 음식이 맛이 없으면 식당을 잘못 찾아간 것이고 사는 맛이 없으면 사람을 잘못 선택해서 같이 살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려는 사람을 보면 여행의 목적지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에 대해서 즐거운 고민을 계획에다 보탠다. 여행의 맛을 최대한 높이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맛을 미리 알고 사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맛을 기대하고 맛을 만들고 맛을 찾는다. 뜨겁게 나오는 중국음식이라든가 뜨겁게 나오는 한국음식은 식으면서 그 맛이 달라진다. 사람도 뜨거울 때에는 제법 맛이 있었는데 살다보면 온도가 식고 맛이 간다. 그러기에 살아가면서 온도를 유지하고 사는 맛을 서로서로 만들어주는 사람은 최상급의 사람이고 더할 나위 없는 부부다.

겨울의 햇빛도 찬바람만 없으면 따스하게 바위를 데운다. 같이 사는 사람이나 아는 사람들에게도 따스한 온도가 그 마음 속에는 항상 있는데 잠잠하다가도 갑자기 불어대는 찬바람의 변덕처럼 그 때 그 때 기분따라 그 날 그 날 일진따라 찬바람과 더운 바람이 오락가락하며 분다. 그러니 사는 맛이 꿀맛같이 달게 있다가도 식은 말 몇 마디에 사는 맛이 금방 가시고 사는 맛이 없어 얼굴에 구름을 깔고 입맛을 다시다가도 따스한 말 몇 마디에 사는 맛이 또 금방 생긴다.

분위기를 조성할 줄 아는 눈치라는 것이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이민의 맛은 무엇일까? 또한 미국에서 사는 이민자의 맛은 무엇이며 그 맛은 어떤 것일까? 별로 놀러갈 데도 없이 죽어라하고 일만 하는 재미일까? 비록 빈 주머니는 찔렁거려도 부자 나라에서 사는 재미일까?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가나안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지만 ‘가나안’을 짧게 발음하면 우리말에 ‘가난’이 되고 우리말 ‘가난’을 길게 발음하면 히부리어의 ‘가나안’이 된다. 말인 즉 히브리어나 한글이나 내용인 즉 거기서 거기다. 우리에게 ‘가나안’도 되고 ‘가난’도 되는 미국, 생각은 자유라서 어떤 사람은 ‘가난’한 한국땅에서 허기진 눈앞에 젖과 꿀이 그림으로서라도 절절 넘쳐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이민을 왔다고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을 터이고, 어떤 사람은 ‘가나안’이 된 지금의 한국에서 ‘가난’한 땅을 찾아 이민을 잘못 왔다고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세상 사는 동안 한가지 맛으로만 살 수는 없다. 가난도 맛이요, 노동도 맛이요, 피땀도 맛인 반면 풍요도 맛이고 할 일 없이 빌빌거리는 것도 맛이다. 여유있어 골프채 흔드는 것도 맛이요, 처자식 생각하며 대가리나 꼬리 잡고 생선을 흔드는 것도 맛이다. 큰 돈 모으는 것도 맛이고 잔돈 모으는 것도 맛이다. 밥에는 밥맛이 잇고 빵에는 빵 맛이 있다. 양주 맛도 맛이고 소주 맛도 맛이다. 피자에는 피자 맛이 있고 빈대떡 맛이 있다. 세상 일은 평행선이 아니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삶은 굴곡이다.산다는 것이 산을 넘는 일이라 지구 위에 산이 많다.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는 고단한 산길의 행보 속에서도 입맛울 다져보면 맛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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