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잘못 꿰어진 단추

2008-06-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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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는 결국 화를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의 새 정권 출범이후 지난 3개월간 정부정책을 지켜보고만 있던 한국의 국민들은 급기야 거리로 뛰쳐나왔으며 불행하게도 청와대 수석들과 내각의 총 사퇴,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동족끼리 서로 맞불이 붙는 기가 막힌 사태까지 발생했다.

확실한 검증 없이 고소영, 강부자 내각으로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영어정책, 교육자율화, 공기업 민영화 , 대운하 건설 등 하나같이 국민들과는 거리가 먼 정책을 펴 참다못한 국민들은 마침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을 계기로 성난 민심을 촛불로 표출, 온 나라가 연일 들끓는다. 당당하게 출범했던 새 정부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이승만 대통령 하야, 5.16혁명으로 내각이 총사퇴하는 사태가 생긴 이래 세 번째로 기어이 산산조각이 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 왔다. 거리에 성난 민심은 급기야 동족끼리 서로 겨누는 보수, 진보 양측의 대결 양상으로까지 번졌다. 이것은 애초부터 ‘인사가 만사’라는 원칙이 없는 상태에서 출범했던 이명박 정부의 예상됐던 결말이 아닐까. 결국 잘못 꿰어진 인선은 국가의 중대 사태를 야기 시켰으며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까지 초래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사람들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다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하나같이 국민을 위해서나 하다못해 대통령을 위해서도 누구하나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이나 의리, 베짱이 있는 사람이 없다. 역대정권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 때는 차지철, 전두환 때는 장세동, 김대중 때는 박지원, 노무현 때는 이해찬 국무총리 등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서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앞장서서 방패막이 역할을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인선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하나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이 난국을 일찍이 돌파해 나가기 위한 안조차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고 혹시나 만의 하나 불똥이 자신에게 떨어질까 염려하며 몸만 사리고 있었다. 성난 민심이 하늘까지 치솟자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은 사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위원이 의원 총회에서 인선을 잘못해 결국은 문제를 일으켰다며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날 것을 촉구하자 인사를 좌지우지하던 청와대 비서관이 곧바로 사표를 제출하고 짐을 싸가지고 청와대를 떠났다. 또 100명이 넘는 여당 의원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사람은 많아도 이런 상황에서 위기를 돌파할 구원투수가 없는 것이 이 정권의 문제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 인선 때 각료들을 ‘Best of Best’로 뽑았다고 했지만 이미 청문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인물들이 되고 보니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국민들의 눈높이와는 도무지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난국을 해결할 능력도, 책임지고 나서 국민들을 달래줄 인물들이 없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사태가 국가에 발생하면 전 부서는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을 게 아니라 모두가 나서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학생들은 지금 등록금이 너무 높아 공부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화물연대는 총파업으로 물류대란이 예상된다. 내각은 이런 상황에 놓인 국민들을 위해 총사퇴도 사퇴지만 심기일전 하겠다고 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도 감복해서 따르지 않겠는가. 그냥 사표만 내놓고 나간다고 능사가 아니다. 국회의원들도 서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누구 하나 앞장서 이런 분위기로 끌고 갈 인물이 없다.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10조원에 달하는 세금감면으로 개인당 얼마씩 돌려준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겠는가.

한국은 지금 쇠고기도 쇠고기지만 총체적인 경제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청와대와 내각뿐이 아니라 집권여당 전체가 국민을 달래줄 획기적인 안을 갖고 나와야 한다. 친박 연대 서청원 의원은 노태우 대통령 당시 대통령 직선제 수용여부를 놓고 국론이 분열됐을 때 6.29선언 같은 특단의 조치로 난국을 돌파한 일이 있듯이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파격적인 무엇인가가 나오지 않으면 지금의 이 비상시국을 돌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잘못 꿰어진 단추를 바로 꿰지 않을 경우, 촛불의 불길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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