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통(通)하였느냐?

2008-06-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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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경제특집부장)

한국의 촛불시위가 점입가경이다. 대통령이 나서 대국민 사과까지 했는데도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격앙된 시민들은 더 많이 몰려들고 있다.

예전 80-90년대의 험악했던 시위에 익숙해서인지,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촛불 시위는 시위라기보다는 축제의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물론 이 와중에서도 일부에서는 좌경 세력이라며 색칠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미국의 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반미주의자라며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간다. 미국 사람들도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고 비난할 수 있는데, 하물며 한국 사람이 미국의 정책을 반대하는데 반미라고 하는 것은 친미가 아니라 숭미 수준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사실 미국의 한인 입장에서 이번 쇠고기 파동은 씁쓸하기 이를데 없다.우리가 먹는 쇠고기가 광우병에 노출돼 있다고 믿는 한인은 거의 없겠지만, 엄격히 말해서 100%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실제로 뉴욕 일원의 한인 쇠고기 구이집의 매출은 상당히 떨어졌다고 한다. 설렁탕 등의 판매는 그보다 더 줄었다.

사실상 쇠고기 파동은 신뢰의 문제이다.
고기 도매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가 판매되고 있지만 안전한 도축과 검역, 포장 과정 등을 거쳤기 때문에 믿는 것”이라며 “(한국의) 지금 상황에서는 뭐라고 말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를 단순히 집단 히스테리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렵다.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문제점은 도외시한 채 정상회담에 맞춰 협상을 끝내고, 불평하는 국민들에게 “싫으면 안먹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정부가 할 짓이 아니다. 미국의 비위를 맞추다가 한국민의 자존심을 무시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털어놓았다. 소통(疏通)이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과정을 살펴보면 과연 이 대통령이 소통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한국 정부는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며 답답해하고, 국민은 정부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한심해 한다. 시위대는 재협상을 거론하고 있는데 정부는 재협상을 하면 국가적 위신문제라며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체가 자율적으로 월령 표시 등으로 해결하려 한다.

한국 정부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있지만 재협상이 미국의 비위를 거스를까 두려운 것처럼 보인다.반대론자들은 협상을 무효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재협상을 한다고 해서 쇠고기의 안전 문제가 100% 보장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럴 때는 한미간 마찰이나, 차후의 불이익을 걱정하기보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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