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인병

2008-06-04 (수)
크게 작게
김윤태(시인)

다이아몬드의 내용물은 알아도 금의 내용물은 아무도 모른다. 금을 그저 광물 쪽에다 밀어 넣었지만 광물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신비다. 무엇이 금의 색깔을 저토록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으며 지적이고 찬란할 뿐만 아니라, 천년 만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다이아몬드에는 모조품이 있으나 금에는 모조품이 없다. 무엇이 금을 만들었는지 그 내용을 밝힐 수가 없으니 모조품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잡물과 섞어서 금의 가치와 값을 내릴 뿐이다.

부자나 가난하거나 그 집에 아이가 태어나면 ‘금쪽같은 내 새끼’가 된다. 내 새끼에 대한 모조품을 만들어낼 수 없듯이 금 또한 그런 것이다. 최상의 것을 금으로 친 것이다. 인생은 금이다. 인생은 모조품이 될 수 없는 신비다. 한 냥의 금을 얻어 손에 쥐어도 기쁘기가 그지 없는데 금보다도 더 값진 인생을 얻어 한 세상을 사는데 그보다도 더 기쁜 일이 있을까?
인생은 진짜 금이다. 진짜 금을 가지고 세상에 왔는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거기에다 잡물을 섞으니 섞는 비례에 따라 18금의 인생도 되고 14금의 인생도 된다. 섞으면 변하는 것이 금이다. 아무리 변하지 않는 금이라 해도 불순물과 섞이면 그 아름답던 색깔도 변한다. 젖먹이 아이들을 보면 누구나 다 금쪽같이 예쁘고 고운데 나이가 들면서부터 맑고 예쁘던 아이들이 달라진다. 잡물이 섞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나이들어 성인이 되어도 우러러보고 싶은 금쪽같은 사람으로 남아있고, 어떤 아이는 자라면서 보기에도 지저분하고 별로 쓸 데가 없는 녹슨 쇠조각이 된다. 성인병자가 되는 것이다. 몸에만 성인병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도 성인병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성인병이 없다. 이익에 맞추어 상대를 저울질하고, 공허한 개념으로 마음과 영혼을 논하고, 허상으로 종교와 사회를 논하려는 어른들의 정신과 마음의 병이 성인병이다.
많은 사람이 성인병을 앓고 있다. 풍족한 물질문명이 가져다 준 욕심의 결과다. 더 많이 가지려는 몸부림과 더 높이 출세를 해보려는 발버둥 때문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비교적 성인병을 앓지 않는다.

남들보다도 더 높이 출세를 했다거나 남들보다도 가진 것이 더 많이 있다면 속세를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을런지 모르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주고 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얻거나, 가치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잃어버리는 것도 있고 줘야하는 것도 있다. 얻기 위해서다. 교회는 왜 가고, 절은 왜 가는가? 많은 시간을 오려서 교회나 절에 바치고, 집안살림에도 충족치 않은 가정경제에서 기쁜 마음으로 한 몫을 뚝 떼어 헌금으로 바칠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못하는 부지런한 봉사를 의무처럼 덧보태어 주면서 한 세상을 살다보면 하느님이나 부처님으로부터 받을 것이 있다고 믿고 기다리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희생이란 주는 것이다. 공짜는 없다. 주어야 얻는다. 종교로부터 마음과 사상을 감금당하고 가치와 자유를 빼앗겨버린 중세의 암흑기에서 인간회복이란 절실한 자아로 르네상스를 탄생시켰을 때에도 많은 희생이 따르지 않았던가?

미국이 세계 속에서 인권 중시의 중심에 서 있게 한 힘도 링컨대통령의 노예해방을 도모한 남북전쟁의 희생 때문이 아니던가? 얻는 것이 있으면 잃
는 것도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잃는 것은 아까워하면서 소득을 바라는 현대식 관념이 성인병을 만드는 성인 바이러스다. 욕심이다. 잃는 것의 의미를 알고, 받는 것의 감사를 안다면 성인병은 생기지 않는다. 주고 받는 자연식 관계의 밸런스란 예방약과 같은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주면서 살고 계십니까?

일방통행 식의 관계는 없다. 얻으려면 주거라! 구약의 아브라함이 늙어서 낳은 금쪽같은 자식을 하느님에게 바쳤더니, 신약에서 보여주듯 하느님은 금쪽보다 더한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를 주지 않았던가! 주고 받는 너도 금이고 주고 받는 나도 금이다. 금에는 색깔이 변하는 성인병이 없어야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