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촛불은 정전 때 켜자’

2008-05-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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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취재1부 부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책 논란으로 한국에서 양초가 또다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어린 학생에서부터 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는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삼삼오오 모여 서울을 비롯한 대한민국 각 지역에서 촛불을 들고 ‘미친소’를 외치고 있다.

‘미국에 오래 살면 정이 메마르고 여유가 없어진다’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연일 텔레비전에 비춰지는 이들의 시위 장면을 보면서 기자의 뇌리에 스친 첫 번째 생각은 ‘이 얼마나 큰 경제적 손실인가’였다.한국 정부에 따르면 각종 집회와 시위로 인한 손실이 연간 12조 원에 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와 같은 발표에 대해 “모든 걸 ‘경제 수치’로 환원하는 이(명박) 대통령다운 반응”이라고 꼬집고 있다.


미국의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한국인들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방법이 틀려먹었다. 한국 국민들의 촛불시위는 지난 2002년 겨울부터 본격화 돼 이제는 ‘국민 문화제’로 자리를 잡았다. 2002년 한국의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량에 치어 숨진 사건 발생 이후 모 언론사의 시민기자가 ‘촛불시위를 통해 숨진 피해자들을 추모하자’고 인터넷에 제안한 것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지면서 그 해 11월 서울 광화문 앞에 처음으로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린 것이다.

촛불시위의 대표적인 장소가 돼버린 광화문 앞은 서울의 중심지이다. 이곳에 수천에서 수만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면 당연히 교통이 마비된다. 요즘처럼 ‘개솔린’하면 욕이 나올 정도로 유가가 폭등하고 있는 시대에 교통이 마비되면 석유 소비량이 줄어들어 좋을 것이라는 낭만적인 견해도 나올 법 하지만 교통마비는 결국 국민들의 생산 손실로 직결된다.
그 뿐인가? 촛불집회로 인해 그 시간에 더욱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학생과 직장인, 근로자들이 촛불을 들고 멍하니 시간을 낭비한다. 집회가 열리는 그 시간 범죄 단속에 힘을 써야 될 수백여명의 경찰 인력이 시위자들 때문에 절도범이나 폭력배들을 잡지 못하고 있다.

불을 켜지 않고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들은 수도 없이 많다. 좀 더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해보라는 얘기다.
국가의 생산력에 기여해야 될 사람들이 수도 중심지에 모여 촛불을 켜고 교통을 마비시키는 행위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양초 장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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