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소의 지혜

2008-05-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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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Fairfield Trading)

한여름철 개미 떼들을 관찰하다 보면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비가 오기 전이면 다른 때보다 더욱 활발히 개미집을 드나들며 먹이를 저장하기에 바쁘다. 그들이 번갈아가며 드나들며 서로 마주칠 때마다 더듬이를 까딱대며 인사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앞에 먹이감이 더 있다는 얘기인지, ‘하이’하고 수고한다는 소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바쁜 발걸음 중에도 빠지지 않고 인사하는 모습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 같다.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면 여러가지 동물들이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생존의 지혜를 엿볼 수도 있다.

지혜란 학식이나 인격하고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많이 배웠다고 더 지혜로운 것도 아니다.오히려 덜 배운 사람이 인생을 더 지혜롭게 사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본다.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슬기롭게 정확히 처리하는 것이 지혜의 정의다. 인생 경험이 많은 연장자로부터 우리는 많은 삶의 지혜를 전수받는다. 물불을 가리지 않던 청장년 시절 부모님들의 간섭이 우리에게 그들이 평생 익힌 지혜를 일러주는 교훈이었지만 그 때 당시엔 잔소리로만 들리던 불경스러운 때가 생각난다.


우리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한다. 미소(媚笑)가 주는 처세의 이점(利點)은 우리 생활을 훨씬 부드럽게 이끌어 준다. 언어 소통이 불편한 이민 1세대들에게는 여러가지 타국살이에 곤란한 경우에 처할 때가 많다. 스몰 비즈니스의 가게 주인이 손님과 마찰이 있을 때, 택시 기사가 손님을 맞을 때, 헤어살롱에서 고객이 마음에 안들어 할 때, 세탁소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단골손님에게, 식당에서 계산서를 전하는 웨이트레스의 잔잔한 미소는 잠깐 스치는 인연이라도 우리의 삶을 한결 여유롭게 인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서양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얼굴 표정 관리를 주의깊게 관찰하여 보면 우리가 참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 안면이 있고 없고간에 사람을 만나면 우선 얼굴 근육이 자동적으로 얇은 미소짓는 형태로 변형한다. 그리고 상대방과의 정도에 따라 미소의 크기가 달라진다. 아마 어린이 시절부터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배운 탓이리라.여자가 웃음이 헤프면 천한 여자로, 남자가 웃음이 많으면 체신머리가 없다고 배우며 자랐다.

정숙한 여인이 낯 모르는 사람에게 미소를 허락지 않은 우리의 여성교육은 지금까지도 우리 여성들의 얼굴이 성난 얼굴로 서양인들에게 비친다. 물론 이곳에서 나고 자란 세대들은 예외지만 나부터 얼굴 표정관리가 현지 적응에 어려운 건 사실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수백 세대 중 우리 한인이 약 절반 정도 살고 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젊은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한국분이세요?” “네” “그런데 어째서 한국사람들은 왜 서로 인사가 없지요?” “나도 동감입니다만...”
얼마 전 이곳으로 이사 온 주민 같다. 좁은 공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서양인은 먼저 가벼운 인사가 있어도 대부분 동양인들은 허공만 쳐다본다. 승강기를 탈 적마다 동양인을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느냐 마느냐 순간적으로 작은 갈등을 느낀다.

일개미들이 서로 만나면 더듬이를 흔들며 인사하는 것같이 우리 인간에게는 미소의 손쉬운 방편이 있으면서 서양인들이 보기엔 항상 성난 표정처럼 나의 얼굴 근육을 언제까지 굳혀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미물인 개미들로부터라도 지혜를 배워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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