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민심이 천심이다

2008-05-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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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새로 출범한지 3개월 밖에 안됐는데 벌써부터 갈팡질팡하고 있다. 사사건건 반대에 부딪치면서 국민들의 원성, 불만의 소리가 쉬지 않고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출범 후 지금까지 새 정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국민들이 너도 나도 쇠고기 문제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노골적으로 새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국민들은 연일 쇠고기 수입전면 개방 반대 촛불시위,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도는 임기 초인데 불과 29%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지지도를 가지고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나갈 것인지 저으기 걱정스럽다. 임기 말이나 돼야 볼 수 있는 레임덕 현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면 앞으로 남은 4년여의 잔여기간 내내 시끄러울 것이다. 지금도 벌써 일본의 독도 교과서 삽입과 관련 일본과의 외교문제, 공기업 민영화, FTA 연내 통과, 대운하 건설 밀실 추진 등에 국민들은 하나같이 반기를 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자신을 성공적인 신화, 입지전적인 인물로 만든 현대의 사장 스타일로 정치를 강공드라이브로 해나가다 ‘쇠고기’라는 결정적인 암초를 만났다. 실제로 그는 한 나라를 다스려갈 수 있는 자질과 근본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동안 나라와 국민, 그리고 정치를 자신이 성공으로 이끌었던 비즈니스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과 같이 비쳐졌다. 그로인해 지난 3개월간 이명박 대통령을 선장으로 한 새 정권은 국민들을 하루도 마음 편하게 해주지 못했다. 권력을 업고 등장한 정권인수위원회의 오만과 독선으로 시작, 강부자 내각, 고소영 S라인 인맥, 법적으로 임기가 남아있는 공기관장의 자리 박탈이나 선거에 일등공신인 박근혜씨에 대한 홀대 등은 국민들의 마음을 식상하게 만들면서 새 정권
에 대한 회의와 신뢰감을 실추시켰다.

만일 이번에 쇠고기가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도 국민의 생각이나 뜻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나라를 계속해서 본인이 추구하는 대로 밀고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국민의 생각을 헤아리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사과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국민의 힘, 국민의 뜻, 국민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을까? 적당히 우선 고비를 넘기자는 의도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이제 대통령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자신이 진두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총리나 하부 관리들이 다 하도록 업무를 맡겨야 한다. 그동안 안 보이던 총리도 불러들이고, 대통령의 설침에 눈치만 보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하부 관리들도 목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대통령은 자고로 국민의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 국민을 떠받드는 심정으로 하지 않으면 지금의 이 위기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은 특히 대선당시 자신이 굳게 내건 ‘경제 살리기’ 약속에 은근히 기대를 걸고 표를 찍어주었던 일반 서민들의 실망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갈수록 치솟는 물가를 보면서 이게 아니다 싶어 현 정권에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으로서 어떤 포부와 설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존립은 대통령 한 개인의 아이디어로 이끌어지는 것이 아니라 4000만 국민의 의견과 아이디어, 그리고 대
통령의 지도력으로 이어져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올바른 나라를 만들려고 할 것 같으면 그 표본이 돼주어야지 민심을 저버린 대통령 개인의 아집이나 강권으로 끌고 갈 것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조심조심 내 나라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파악해 기왓장을 한 장, 한 장 쌓는 심정으로 돌다리도 두드리듯 겸허한 자세로 걸어가야 한다.

덮어놓고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호언장담하는 것은 전 세계의 경제가 불황인 이 시대에 도무지 맞지 않는 말이다. 특단의 대안이 아니고서는 무슨 수로 이명박 대통령이 이 거세게 불어 닥친 불황의 늪을 빠져나간단 말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이명박 대통령에 의한,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를 강조한 에이브라함 링컨의 유명한 연설경구를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 민심을 외면한 정치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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