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형제 교장의 어머니

2008-05-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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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두 주 전 뉴저지 해켄색에 살던 앤 몬테사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84세). 7남매를 두었는데 그 중 4형제가 북부 뉴저지에서 현직 교장들이다. 14년 전에 사망한 남편도 교장이었다. 어머니를 추모하며 7남매가 모여 어머니를 회상하였다. 그들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네 개의 가치관을 뚜렷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남을 존중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웃을 섬기고, 믿음으로 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바른 말, 옳은 행동을 교훈으
로 가르치지 않으시고 자신의 생활을 통하여 평생 보여주셨다”고 둘째 아들 찰리가 술회하였다. “어머니는 우리가 집에 돌아갔을 때 언제나 집에 계셨고 두 팔을 벌려 안아주셨다”고 넷째 아들 로이가 말하였다. “어머니는 정말 겸손하였다. 남들에게 자기 자랑을 절대 하지 않으
셨다”고 맏아들 죠셉이 회고하였다. 그 어머니에 그 자녀들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대학 시절 3년 동안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였다. 어머니와 둘이서 ‘하꼬방’(낡은 상자로 만든 오막살이)에 살았다. 방 하나 뿐인데 물론 부엌도 없고 아궁이도 없고 바닥도 마루이다. 벽에 장 세 줄이 있었는데 거기에 몇 개의 식기와 취사도구가 얹혀 있었다. 밖에 돌멩이로
쌓은 가설 아궁이가 있어 밥도 찌개도 거기서 끓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를 맞으며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비가 심하게 쏟아지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가설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아계신 것을 보았다. 머리는 비바람에 날리고 온 몸과 옷이 폭삭 비에 젖어 보
기에도 민망하였다. 그 때의 어머니 모습이 내 머리 속에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아들을 향한 사랑과 희생에 흠뻑 젖은 거룩한 모습이었다.


그대가 가장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다면 어머니라는 이름일 것이다. 그대가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머니일 것이다. 나쁜 짓을 하며 살다가도 그대가 꼭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있다면 어머니일 것이다. 어릴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기대고 싶은 가슴이 있다면 어머니의 가슴
일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바닥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사랑은 지치는 법이 없다. 모두가 나를 의심해도 어머니만은 나를 믿어주시고 모두가 나에게 실망해도 어머니만은 끝까지 나에게 희망을 가져 주신다. 여류 문학가 얼마 본벡은 신이 어머니를 창조하는 우화를 지었다. 이 최고
의 피조물은 여섯 쌍의 손과 세 쌍의 눈이 달렸다. 그 신기한 입술로 키스하면 다리가 부러진 아이부터 실연당해 상심한 소녀의 마음까지 다 치료된다. 신은 이 피조물에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강한 마음을 주셨으며 남몰래 흘릴 수 있는 많은 눈물을 저장시켰다.

지구는 돌고 문명은 오고 또 갔으나 어머니라는 이름만큼 값진 이름은 인류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가 안 된다. 그 사랑은 기한이 없다. 어머니는 부족한 아이일수록 더 사랑한다. 어머니의 무릎은 우리의 처음 교실이었고 어머니의 얼
굴은 우리의 처음 교과서였다. 쉴 새 없이 퍼붓는 아이들의 질문에 지치지 않고 꼬박꼬박 대답해 주신 어머니는 위대한 학자요 끈질긴 교육자였다. 어머니는 간호사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재봉사가 되고 운전기사가 되고 상담자가 되고 청소부가 되고 때밀이도 되고 동무가 되고 얘기
꾼과 무용수까지 되었다. 그대 알고 있는가? 그대가 기뻐할 때 어머니도 기쁘고, 그대가 슬플 때 어머니도 슬프고, 그대가 아플 때 어머니도 아프다는 것을. 어머니는 그대와 한 몸이었던 것이다.

그대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기도해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한 명, 어머니 뿐이다. 그대를 위하여 진짜로 희생할 수 있는 사람도 오직 한 분, 어머니 뿐이다. 그대에게 어머니는 성전이며 순교자였다. 그대가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자랑스러운 일을 성취했거나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
거나, 외롭거나 슬플 때도 그대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어머니였다. 그대를 끝까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그대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주시는 분, 그대를 마지막 순간까지 용서하는 사람이 어머니이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어머니 스잔나는 18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매일 저녁 한 명씩 개별적으로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다고 한다. 매일 열 여덟 번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이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 수상이 되었을 때 한 신문이 그를 가르친 선생님들을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찾아내어 보도하였다. 훌륭한 인물 뒤에 훌륭한 스승들이 있었다는 취지였다. 처칠 수상이 그 신문사에 즉각 전화하였다. “당신들 명단에 가장 중요한 교사가 빠졌소. 바로 나의 어머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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