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오바마 돌풍, 대권 달성 가능할까

2008-05-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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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고문)

지난 13일 실시된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민주당 예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버락 오바마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으나 클린턴 후보가 민주당 지명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오바마 후보가 지금까지 예선에서 확보한 대의원 수가 클린턴 후보보다 160여명 앞서 있는데 앞으로 예선을 남겨두고 있는 5곳의 대의원을 합쳐보았자 60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당 출신의 상하원의원, 전직 대통령, 주지사, 당 간부로 이루어지는 수퍼 대의원의 지지도는 클린턴 후보가 월등히 우세했는데 오바마 후보가 이마저 추월하고 말았다.

오바마 후보의 지명 가능성이 점점 더 확실해지면서 그의 선거운동도 예선보다는 공화당 매케인 후보를 상대로 전환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제가 정착되어 있는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양당의 지지층이 대체로 구분되어 있다. 공화당의 지지기반은 중산층 이상의 상류층과 기업가, 백인, 보수세력이며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중산층 이하의 서민층, 노조, 유색인종, 진보세력이다. 이와같은 지지기반의 분포에 따라 공화당은 주로 중서부와 남부, 민주당은 동부와 북부지역에서 우세하다.


그런데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기반이 비슷하여 판세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가 50개 주 중 14개 주에 이른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라고 하는 주인데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이 14개 주의 선거인단이 166명으로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주에서는 현 정부의 실적이나 양당 후보의 공약, 인물, 선거전략 등에 따라 지지 정당이 오락가락한다.
이번 미국 대선의 특징은 민주당에 절대적으로 우세한 상황이다. 부시대통령의 공화당 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지지부진하게 이끌어 지난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패배한 후 지난 해부터 부실 모기지로 인한 경제난이 가중됨에 따라 공화당의 지지도는 더욱 추락했다.

따라서 민주당에서 누가 대선후보로 나와도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게 되었다. 지난번 한국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과 이에 따른 인기 추락으로 인해 한나라당에서 누가 후보로 나와도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나라당의 경선이 과열하여 그 후유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예선전이 치열한 것도 이와같은 사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오바마 후보의 민주당 지명이 확실시 되는데 과연 그가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를 누르고 대권을 차지할 수 있을까. 오바마 후보는 선거에서 대운을 타고 난 인물인 것 같다. 민주당 예선 초기에 군소후보군에 속하다가 연전연승 끝에 최강자인 클린턴 후보를 앞지른 선거과정을 보면 누구도 그의 승세를 누를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사실 그는 공약이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없고 알맹이 없는 ‘변화’라는 말 한마디로 표심을 사로잡아 왔다. 그런데도 최근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와 매케인의 가상 대결에서도 51 대 44로 오바마 후보가 우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와 매케인의 양자 대결은 단순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결이 아니라 흑백의 대결이라는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선거란 정당이나 인물, 정책으로만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인맥이나 지연 등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요소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인종적으로 구성이 복잡한 미국에서는 인종문제가 선거의 최대 요인이 될 수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가 모두 백인이었을 때는 어느 후보가 어느 인종에 더 우호적이냐에 따라 선호도가 결정되었지만 후보의 인종이 흑백으로 갈릴 때는 인종간 쏠림현상이 발생하는 새로운 양상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미 이런 현상은 오바마 후보와 클린턴 후보의 예선과정에서 명확하게 나타났다. 웨스트 버지니아 예선에서 클린턴 후보가 이긴 것은 백인들의 쏠림현상 때문이었고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오바마 후보가 이긴 것은 흑인표의 쏠림현상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스윙 스테이트 14개 주는 매케인에게 유리하다고 한다. 이같은 인종적 요소를 감안하여 매케인 후보는 민주당이 강세인 캘리포니아를 공략하고 있으며 오바마 후보는 흑인이 많은 노스 캐롤라이나와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는 여러 인종이 살고 있지만 아직은 백인 중심의 나라이다. 대주주가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처럼 백인들에게는 백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정서가 형성될 수 있고, 흑인은 흑인대로 흑인후보라는 이유만으로 편을 들 수도 있다. 이번 선거가 흑백선거가 되어 인종간 쏠림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면 전통적인 양 당의 경쟁구도가 무너지고 무의미해지는 아주 특이한 선거가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오바마 돌풍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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