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진 참사를 보고 생각나는 것

2008-05-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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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영(전 언론인)

중국 쓰촨성의 한 도시에서 큰 지진이 발생, 수 만명이 목숨을 잃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현지에 달려간 기자들이 전하는 기사와 현장사진에는 목불인견의 참상들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 초등학교 건물이 폭삭 무너져내린 잔해에서는 뒤엉켜 매몰된 어린 학생들의 주검이 무더기로 드러나 자식 가진 부모들의 가슴은 미어지고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중국에서는 지난 1976년에도 당산에서 이보다 더 큰 지진이 일어나 27만명이나 희생된 일이 있었다. 미얀마의 싸이클론(인도양에서 발생한 태풍) 참사도 소상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현지의 비극적 사연들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류는 이런 자연재해를 어제 오늘 뿐 아니라 유사이래 끊임없이, 수도 없이 겪어왔고, 인지(人知)가 발달하지 못한 그 옛날에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징벌이라고 여겨 이를 겁낸 먼 조상들의 공포심리와 안전을 비는 소박한 소망심리가 합쳐져 원시종교의 발단으로 되었다.몇해 전 인도네시아 해변을 휩쓴 큰 해일 참사로 20여만명이 한순간에 사라진 비극이 일어났을 때 한국의 한 대형교회 유명 목사가 “예수 안 믿어 천벌받은 것”이라고 얼빠진 소리를 하여 온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이 목사의 발언이 제정신에서 말한 진심이었다면 그의 지적 능력은 벼락칠 때 벌벌 떨며 죄도 없이 용서 빌던 원시인의 그것과 질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18세기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였다. 공교롭게도 중세기 때의 종교재판소 건물을 시작으로 해서 가톨릭대성당, 그밖에 웅장한 종교 우상들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시내 곳곳에서 대형 화재들이 일어났고 도합 3만여명의 시민들이 죽었다. 사회는 불안하고 민심은 흉흉해졌다.이 때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깡지드’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소설에서 재난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당시 유럽사회를 지배하던 종교적 세계관에 강한 의문을 던지고 가톨릭을 통렬하게 풍자하였다.

르네상스로 싹튼 인본주의와 합리주의가 되살아났고 이 때부터 지진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본격화 되었다.지진이란, 지구 내부에 아직도 액체 상태로 끓고있는 마그마 위에 떠있는 몇 조각의 대륙판이 움직이면서 부딪칠 때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라고 과학은 밝히고 있다.다시 말해 이 에너지가 땅을 가르고 건물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죽인다. 예수나 천벌과는 상관없는 자연의 무의미한 운동이 빚어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해 준다.

프랑스의 수학자 파스칼은 그의 유고집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쓰고 “자연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방울의 증기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인간의 힘은 더 위대하다. 사람은 갈대처럼 약하지만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라는 요지의 명언을 남겼다. 자연에는 없는 생각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인류는 자연의 운동법칙을 밝혀내고 그것을 이기고 대체하는 위대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 요즘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연재해를 과학의 차가운 머리로 대처하고 인류애의 뜨거운 가슴으로 보듬어 불행한 이웃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할 것이다. 그들은 죄를 지어 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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