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책상

2008-05-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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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뉴욕시 교육청 학부모 조정관)

몇달 전에 남편 리차드가 나에게 테이블을 만들어 준다며 원하는 모양을 그리라고 해서 우리 집 뒷뜰을 향한 창문 코너에 딱 맞는 책상의 모양을 그려서 주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지난 4월 15일, 내 생일에 선물로 지하실에서 한참을 걸려 만든,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 멋진 책상을 만들어 주었다.그가 모든 한국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잘 다니더니 결혼 10년 후, 더 이상 한국사람들이 모여서 모두 한국말로만 서로 대화하는데 혼자 말없이 점잖게 앉아있는 미국사람의 역을 그만 하겠다고 선언하고 모든 한인 행사에는 불참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40이 넘으니 록큰롤 음악 콘서트에 마니아가 되어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자주 갈 때는 두 번씩이나 다니기 시작했고 말려도, 다퉈도 소용이 없고 계속해서 7~8년을 다녔다. 남편은 빈티지 뷰틱을 경영하므로 콘서트에 가서 관객들의 패션을 보는 것도 일의 한 부분이라며 사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푼다면서 줄기차게 다녔다. 경영하는 스토어가 한밤중에 끝나 새벽 2시경에 들어와도 퇴근 후 몇 시간 늦게 들어오는 게 아니라며 정당성을 주장하며 좋은 콘서트는 다 구경하러 다녔다.


그런데 지난 해, 옆집에 살고있던 미스터 하트, 맨하탄의 고소득층의 고급 주문 가구를 만드는 목수 아저씨가 갑자기 누나가 살고 있는 플로리다주로 간다며 혹시 사용하던 기계를 사지 않겠느냐고 남편에게 문의를 해서 아주 좋은 가격으로 모든 기구들을 구입하게 됐다. 그 후 시간만
있으면 지하실에서 웅웅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만든다. 원래 전공인 아트를 접어두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직업전선에서 이민자같이 열심히 일하던 남편은 새 취미를 찾은 듯 했고, 첫 작품으로 의자를 하나 그럴듯하게 만들더니 두 번째 작품으로 내 책상을 만든 것이다.

나보다 6살 연하인 남편하곤 곧잘 다투기도 했지만 나의 한인사회에 대한 활동은 적극 후원하고 이해해 주었다. 결혼한지 22년이 넘고 큰 딸이 런던으로 대학에 가면서 훌쩍 떠나고 11학년인 작은 딸은 친구에 몰두해 있으니까 나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많아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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