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친 소 vs. 미친 사람

2008-05-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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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광우병 유언비어 때문에 민심은 들떠있고 노이로제에 걸려있다. 또 미디어는 마냥 떼굴떼굴 시끄럽기만 하다. 무작정 앞서 뛰어가는, 멀리 못 보는 노루들을 쫓아가다 다 물속에 빠져 떼죽음을 당하는 불쌍한 노루떼들 처럼 소도 미치고 사람도 미쳐 있다.

인도에서는 우유 생산 못하는 늙은 젖소들이 길가에 떼지어 자빠져 있다. 힌두교도들에게는 미친 소든 늙은 소든 관심이 없다.(Who cares?).
그러나 사실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소에게 다량으로 투여되는 호르몬과 항생제이다. 호르몬은 소를 토실토실 살찌게 하여 빨리 자라게 하고, 항생제는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해서이다. 호르몬의 부작용은 너무나 많지만 그 중 중요한 것은 면역체계가 악화되어 이상한 병에 걸리기 쉽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라의 군대가 없어져서 적군의 침입이 가능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의관 출신인 친구 의사를 대통령 주치의로 임명했으나 호르몬 과다 처방으로 밥맛은 좋아지며 얼굴이 달처럼 둥그레지고 몸에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러나 뼈가 약해지고 정신이 해이해지는 부작용 때문에 주치의를 파면시키고 호르몬을 끊은 뒤로 탄탄해보이는 정상 얼굴로 회복이 되었다.


그 당시 중요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올림픽 운동선수들에게 호르몬 사용 여부 검사는 필수적이다. 사실은 광우병 검역 검사보다는 면역검사가 더 필요하다. 면역체계가 파괴되어 치료하기 힘든 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많이 본다. 불쌍하다.항생제 남용으로 오는 부작용은 다 알고 있겠지만 꼭 한가지 말할 것은 항생제를 투여했을 때 그 항생제 때문에 죽는 세균도 있지만 요즘은 세균들도 약아빠져서 그 항생제를 영양제로 잡아 먹으면서 더 커지는 내성 균(Resistant Strain)이 생기고, 저항균이 많아지면 항생제를 다량 투여해도 듣지 않고 치료가 힘들어진다. 내성균 때문에 큰 수술 뒤에는 아예 항생제 투여를 중단하고 사용하지 않는 큰 병원들도 많다.

쇠고기에는 호르몬 사용여부와 무슨 항생제를 썼는지를 반드시 표기해야만 한다. 서울 한우 전문집에서 모처럼 먹는 쇠고기는 종이장처럼 너무 얇게 썰어 고깃국물만 적셔서 진짜 고기 맛을 맛볼 수 없다. 이것은 쇠고기가 아니라 가짜다. 진짜 맛있다는 한우는 부자들만의 향유 전용물인가. 가난한 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인가. 택시 기사는 값싼 수입 고기라도 맘껏 먹고 싶은데 그것마저 없어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나도 빨리 미국 가서 값 싸고 양이 많은 뉴욕 스테이크를 맘껏 먹어야지.
사실 전세계 부호들이 미국 오는 이유 중의 하나는 푸짐한 뉴욕 스테이크 먹거리가 좋기 때문이다. 일본 고베 스테이크는(영어로는 코비라고 발음) 값이 배나 비싸기만 하고 맛도 별로다.

사실 고기 맛은 소의 부위와 연령에 따라 좌우된다.
감옥살이 같은 외양간에서 갇혀서 호르몬 살이 찐 소보다 들에서 마음껏 풀을 뜯어먹고 자란 소들은 골육분 사료, 호르몬, 항생제가 필요 없다. 하얀 눈을 흰 이불처럼 덮고 눈더미 밑에서 꿈틀거리며 말없이 한겨울을 지내는 들소들, 얼마나 많은 인고의 밤을 지새웠을까. 소양간에서 키운 가우보다는 자유롭게 자란 들소가 나는 더 좋다.

한국 학교 급식에 잡육 햄버거, 여러 저질 잡고기를 죽처럼 갈아만든 불량품이 보고되었고, 지난 주 프린스턴대학 식당에서는 17명의 살모넬라 환자가 발생했다. 덜 익은 햄버거보다는 웰던(well done)을 먹도록 하자.철새따라 서울까지 날아오는 A1 조류, 서해안을 건너오는 납덩어리 중금속이 함유된 수산물, 아직도 골육분을 사료로 먹는 불쌍한 소들, 이렇게 육해공으로 침범해 오는 독극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미친 소들 보다 진실을 왜곡한 채 군중심리에 휘말려 들떠있는 미친 사람들이 더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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