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쇠고기 파동과 미주한인

2008-05-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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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경제특집부장)

한국의 쇠고기 파동을 지켜보는 뉴욕 한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미국에 사는 입장에서 우리가 먹는 쇠고기가 한국에 가서는 위험한 먹거리가 되는 상황이 당혹스러운 것이다. 미국이 식품 위생 문제에 얼마나 민감하고 철저한 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주의 한인회들이 잇달아 나서서 한인들이 100년이 넘도록 먹어온 미국산 쇠고기가 왜 위험하냐고 옹호하는 것은 한심하다. 사태의 본질을 모른 채 또는 알면서 외면한 상태에서 졸지에 미주 한인동포들을 매국노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뉴욕과 LA 등 각 지역의 한인회들이 일제히 나서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부의 입김을 떠올렸다. 한인회 웹사이트마다 한국 네티즌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올라있다.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친 부분이 있지만 무엇보다 쇠고기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쇠고기도 아닌데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지나쳤다.


사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미국내 소비되는 20개월 미만의 쇠고기가 아닌 그보다 월령이 높은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한국에서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30개월이 넘는 소에 광우병이 잠복할 가능성이 높고, 광우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부위까지도 아무런 검역 방안없이 수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또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의 안전보다 정치적인 이유로 신속한 협상 타결에 더욱 초점을 맞춘 것으로 나타났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의 부적절한 발언 등으로 더욱 불을 질렀다.

심지어 그 과정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을 좌파라고 몰아가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냈다.미국에 살다보니 개인적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그토록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양국의 이익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됐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분노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안타깝다. 왜 이토록 국론을 낭비하는 사태가 벌어졌는지 한심하다.

결국 미국 정부가 나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즉각 수입을 중단한다는 한국의 입장을 받아들이기로 함으로써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분위기이다.
다만 덩달아 뛴 한인회 때문에 미주 한인들의 모양새가 참 우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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