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한 음악 듣기

2008-05-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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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석(소나타 다 끼에자 단원)

나는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는 더더욱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음악의 힘을 믿는데 그것은, 음악이 사람을 영원은 아니어도 순간만은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고 있는 피아니스트 앞에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그 때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벌써 자신들의 작고 연약한 손가락이 하얗고 까만 건반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고, 초롱초롱한 눈 속에는 꿈이라는 행복이 빛났다.언젠가 가곡 연주회를 갔었다. 내 옆자리에는 머리가 멋있게 희어버리신 중년의 노신사가 앉아계셨고 또 그 분 만큼이나 나이드신 성악가는 ‘은발’을 노래하고 계셨다.그 첫 소절 ‘젊은 날의 추억들 한갓 헛된 꿈이라’에 노신사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아마 그 분은 그 순간 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젊은 시절로 돌아가신 것이 분명하다. 그 분에 눈 속에는 아름다운 추억의 행복이 글썽였다.


바이얼린 연주자가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연주할 때 나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설렘이 스쳐 지나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 젊은 날 사랑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 순간 우리의 눈속에는 젊음의 별이 빛났다.꿈, 추억, 젊음, 사랑, 낭만... 음악 속에는 그것들이 감추어져 있어서 사람을 살짝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음악을 듣기만 하면 그 행복은 우리에게 쉽게도 다가온다. 그런데 문제는 고전음악은 듣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의 글은 고전음악 듣기에 도움이 되고자 쓰는 글이다.

사실 무슨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한번 따라 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쉬운 음악부터 듣자-
많은 사람들은 고전음악이라 하면 어려운 음악만을 생각한다. 브라암스의 길고 난해한 교향곡, 어렵다고 소문난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또는 도무지 이해 못할 현대음악 등등 이런 곡들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렵다고 한다.그렇다. 당연히 어렵다. 그러나 그런 곡 말고 재미있고 즐거운 곡부터 듣자. 앞에도 언급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엘가의 ‘사랑의 인사’, 혹은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슬픔’, 쇼팽의 피아노 곡, 한국의 가곡 등등 짧고 재미있고 음악적으로 뛰어난 곡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연주회장에 가자
아무리 맛있는 통조림도 지금 막 만들어낸 신선한 음식과 비교가 되지 않듯이 아무리 뛰어난 녹음기술로 녹음되고, 고가의 오디오 시스템으로 재현되는 CD나 LP도 실제 연주와 비교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연주자의 숨소리, 떨림, 기쁨, 슬픔, 환희같은 것이 없어서 연주자와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음악은 연주자와 청중의 대화이다. 그러기에 연주회장에 가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연주회장이라 하면 카네기홀이나 링컨센터 같은 큰 연주장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찾아보면 우리의 주위에 좋은 연주 장소는 많이 있다.

플러싱에만 하여도 타운홀, 퀸즈칼리지에도 크고 작은 홀이 몇 개나 되고, 또한 굳이 연주장에 가지 않아도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도 작고 큰 연주회가 자주 열리고 있다. 근래에는 교회에서도 좋은 연주회를 접할 수 있으니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가자, 그리고 마음껏 음악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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