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미국 쇠고기가 무슨 죄길래

2008-05-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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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고문)

우리 한인들이 미국에 와서 바뀐 식습관 중에 가장 큰 변화는 쇠고기 섭취량이 많아진 것이다. 미국에서는 햄버거나 스테이크 등 쇠고기가 주식이 되고 있으니 한인들의 식단에도 쇠고기가 빠지는 날이 거의 없다. 갈비나 불고기, 또 스테이크나 햄버거가 아니더라도 국이나 찌개, 비빔밥, 장조림 등 쇠고기가 들어가는 반찬은 부지기수이다.

이렇게 쇠고기를 많이 먹게되니 비만이 큰 문제이다. 그래서 요즘 웰빙 바람을 타고 고기 대신 채소를 많이 먹는 추세이지만 야채만 계속해 먹으면 어쩐지 기운이 달리게 되고 생선이나 닭고기 등 흰살 고기를 먹는 것이 몸에 좋다지만 그것들도 에너지를 내는데는 쇠고기를 따르지 못한다.
그 뿐이 아니라 맛으로도 쇠고기를 능가하는 음식이 없다. 한국음식 중에 최고 음식은 쇠고기 갈비구이이다. 갈비구이에 냉면이면 최상의 식사인 것이다. 미국 쇠고기 갈비는 그 맛이 좋아 한국에서는 LA 갈비라고 하여 한때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냉동 갈비가 귀국 선물로 인기를 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미국 쇠고기가 한국에서 최악의 식품으로 지탄받고 있다. 미국 쇠고기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쇠고기이므로 절대로 수입을 해서는 안된다고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 쇠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입을 허용하기로 한 정부에 대해 “국민들한테 그거 먹고 죽으란 말이냐” “대한민국 국민은 광우병 마루타이다”는 등 마치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서 죽는 것이 확실한 사실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주장이 먹혀 들어가 인터넷 상에서는 미국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이명박 대통령 탄핵안에 100만명 이상이 서명했고 서명자가 계속 늘고 있다.

그러면 정말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리게 되나.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소의 광우병에서 전염되는 변종의 인간 광우병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많이 먹었을 경우에 걸릴 수 있는 병인데 미국에서는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가 판매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광우병으로 3명이 숨졌는데 이들은 모두 영국에서 발병한 사람들이라고 한다.또 광우병에 걸린 사람들이 가진 공통 유전자인 MM유전자를 한국인의 95%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광우병에 걸리기 쉽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도 비약적 해석이다.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반드시 광우병에 걸리기 쉽다는 증거도 없으며 광우병 쇠고기를 먹지 않는 한 어떤 경우에도 광우병에 걸릴 우려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인 중 40%가 MM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단 한 명의 광우병 환자도 없었고 취약 유전자를 가진 재미한인 중에서도 단 한 명의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만약 미국 쇠고기에 광우병 위험이 있다면 미국인이 먼저 먹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신약을 개발해도 한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 먼저 사용하여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시판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국민 보건에 신경을 쓴다. 광우병 쇠고기를 농무성이 그냥 둘 리가 없고 FDA
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질병통제센터, 즉 CDC가 또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한국 언론이 제기한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면 미국 언론이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이런 광우병 소동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보도에 따르면 MBC-TV 등 일부 TV에서 광우병 문제를 제기한 후 인터넷을 타고 계속 번졌고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대회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위에는 10대들이 떼지어 참가하고 있고 인터넷으로 광우병 괴담이 퍼지고 이에 방송이 더욱 부채질을 하고 전교조까지 가세한 가운데 드디어 야당들이 들고 일어나 정치공세로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사건이 이렇게 확대된 데는 이명박 정부의 불찰이 크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문제는 한국에서 한우 농가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일 뿐 아니라 미국에 국내시장을 무차별 개방한다는 심리적 마지노선과 같은 인식이 확산되어 있었다. 그러니 쇠고기 수입 개방에 앞서 정부는 국민의 반발에 대비한 이중 삼중의 대책이 있어야 했는데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 인심쓰듯 쇠고기 문제를 타결지었으니 이런 일이 벌어질만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국에는 이런 일을 빌미로 삼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지난 1980년대부터 반미감정이 서서히 일기 시작하여 과거 10년간 좌파정부 아래서 크게 성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불찰도 불찰이지만 이런 반미운동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 이번 문제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이런 반미세력이 계속 힘을 쓰는 한 이명박 정부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미국 쇠고기를 마구 두들겨 패고 있는 광우병 소동이 언뜻 보기에는 국민적 운동 같지만 그 핵심에는 반미 선동이 도사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 반미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맛 좋고 질 좋은 미국 쇠고기가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있다. 이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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