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글로벌시대의 결혼식 풍경

2008-05-09 (금)
크게 작게
박민자(의사)

흰 거품을 뿜어내는 파도가 밀려오는 에머랄드빛의 태평양 바다가 펼쳐져 있는 호놀룰루 와이키키 해변의 호텔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커플은 나의 조카인 한국인 2세와 일본계 4세와의 이색적인 결혼이다.두 사람은 아이비리그를 나온 유능한 변호사들이다. 신랑쪽은 1세대부터 뿌리를 내린 하와이의 정착민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집안이다.

결혼식 주례를 담당한 사람은 야자수 잎이 그려진 티셔츠 차림으로 하객들의 웃음을 터뜨리는 농담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하였다.
맑은 햇살이 부서지는 초록융단 위에서 신부의 어머니가 차려입은 한복은 민간외교의 하일라이트였다.타민족과 다양한 문화의 접목이라는 주제의 뜨거운 토론광장 같은 분위기다. 마지막 순서로 일본인 하객들이 술잔을 높이 쳐들고 일본 전통 축하인사인 반사이(Banzai-long life)를 실내가 떠나가도록 소리높이 외쳤다. 그들은 청나라 마지막 푸이 황제를 허수아비 황제로 세운 만주국의 궁전에서 반사이를 외치며 축배를 들지 않았던가?


일본은 아시아 대륙 침략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대제국을 꿈꾸었던 과대망상가들이었다. 나는 하와이에서 묵는 동안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 문화센터의 역사박물관을 들렸다. 1800년대 사탕수수 농업의 붐을 일으킨 하와이에서는 1868년부터 시작하여 1885년에는 노동계약을 맺
고 일본인 노동자들이 사탕수수밭에서 값싼 임금으로 일하게 된다. 방의 전면의 벽은 사탕수수밭이 그려져 있고 흙먼지와 땀에 젖어 사탕수수깽이에 찔려 피를 흘리며 노예와 같은 노동을 강요당했던 노동자들의 눈물 젖은 노래소리가 흘러나온다.

노동자들의 번호가 적혀있는 쇠동전 명찰(Metal Identification)이 벽에 붙어있다. 그들은 죄수와 같이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려졌다.
노동자들이 입었던 옷과 양철 밥그릇통, 사탕수수 줄기를 베고 자르는 연장인 삽, 낫 등과 여자들이 쓰던 재봉틀, 이발소, 생필수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진열되어 있다. 일하는 동안 허리를 펴거나 담배를 피우다 들키면 그들을 감시하는 십장은 소나 말처럼 채찍으로 때렸다.1903년 고국을 떠나 겔릭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한인 최초의 이민자들도 사탕수수밭, 이곳에서 피눈물을 뿌렸으리라.

사진 교환을 통해 결혼이라는 ‘사진 신부’들의 흑백사진과 비인도적인 노동에 항의하는 동맹파업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다. 막사에 세워진 일본학교에는 삼강오륜의 교훈의 글이 붙어있다.이민 1세들의 처절한 삶을 살아서 숨쉬는 생생한 현장의 삶으로 재현시키고 있지 않은가?마지막 방은 일본 이민 3세, 4세들이 하와이의 주류사회의 패권을 거머쥔 성공적인 삶을 담고 있다. 일본인들은 2차대전 전범 국가로서의 혹독한 죄값을 치렀다. 1941년 진주만 폭격 후 미국 서부에 살고있던 일본인들을 공정한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10만명의 비전투원인 민간인을 가시철망으로 둘러싸인 강제수용소에 감금하였다. 또한 1945년 히로시마 원자탄 투하로 치명적인 상
처의 흔적을 남겼다.

그들이 과거를 재조명하는 역사기념관을 설립한 것은 역사는 미래를 잉태하기 때문이 아닐까? 신혼 커플은 이민 2세인 일본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았던 판자집 같은 초라한 집에서 신혼살림을 꾸민다고 한다. 명성과 재력이 있는 집안이지만 조상들의 눈물과 땀이 배이고 손때가 묻은 가구가 숨쉬는 집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여있는 일본인들의 전통이다.

강제 민족 수탈과 식민지화로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인 한국과 가해자였던 일본은 뼈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나는 혈통이 섞인 아이는 얼룩진 역사의 부끄러운 치부를 지우며 새로운 역사를 잉태하며 자랄 것이다.원시림의 열대식물과 열대 꽃이 타오르는 태평양 바다 가운데 떠있는 지상낙원의 섬에서 한 쌍의 글로벌시대의 결혼식 풍경이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